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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어떻게 폭력의 방관자들을 행동하게 만들 수 있을까?
입력 : 2023-02-21 오전 6:00:00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더글로리>를 다룬 한 칼럼은 왜 다수는 선한데 폭력은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대중매체에서 그리는 학교폭력 장면은 클리셰처럼 방관하는 다수를 비춘다. 다수는 선한데 왜 폭력을 방관할까? 바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내가 강자의 폭력에 맞서 피해자를 보호하려 행동해도 타인이 그에 발맞춰 함께 행동해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한, 누구도 행동에 나서지 않기에 결국 모두가 침묵하는 방관자가 된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보자. 어떻게 하면 다수가 타인에 대한 신뢰 속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민주주의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조직 운영의 한 방식이다. 한 학급조직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교육의 목표에 합의하고, 그에 필요한 규칙을 스스로 고안하여 다 같이 실천한다면, 그 교실은 민주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가 교실 속에서 배운 민주주의라고는 다수결로 대표를 뽑는 반장선거정도 수준에 불과했다(그래서 여태 우리는 직선제이상의 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한다). 규칙을 정하고 강요하는 건 늘 어른들이었고, ‘어떤규칙이 필요한지 같은 건 질문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학생들이 교사 등 규칙을 강제할 강자가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될까? 힘이 곧 법이 된 교실에서, 선한 다수는 폭력을 휘두르고 따돌림을 주도하는 또 다른 강자에게 무력할 것이다.
 
교실 속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학급의 운영주체인 학생들은 먼저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울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집단적으로 행동한다는 규칙을 정할 것이다. 그제야 학생들은 물리적으로 폭력을 제지하기, 교사에게 알리기, 자초지종을 기록하기 등의 행동에 나설 수 있다.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민주적 과정에서 서로가 함께 행동할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집단행동에는 초인적인 수준의 용기가 필요치 않다. 학생 개개인은 강자의 위협에 홀로 맞서는 대신, 집단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강자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으로 전락한 멈춰!’ 프로그램의 본뜻이 사실 이런 것이었을 터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집단행동에는 고도의 자율성과 책임의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멈춰!’가 웃음거리가 된 건 이조차 학교가 시켜서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어른들의 순진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른들은 오랫동안 학생들이 민주화되는 것, 그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대신) 선언해주었지만, 정작 이를 실현시킬 민주적 행동절차는 가르쳐주지 않은 셈이다.
 
여전히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일까? 하지만 공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다. 폭력의 현장에서 개인을 방관자로 남겨두는 학교가 어떻게 그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어떤 강력한 처벌도, 그 어떤 짜릿한 상상적 복수극도 모든 폭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거나 방지하지는 못한다. 집단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유능한 민주적 학생들을 키워내는 일이야말로 학교폭력에 대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한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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