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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빨간약과 파란약
입력 : 2023-02-24 오전 6:00:00
“내 주변엔 000 후보 찍는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표가 많이 나왔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주변에서 이런 소리가 자주 들렸다. 나 역시 얼마쯤은 이런 신기하고 괴기한 일로부터 예외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정치적 순혈주의’에 빠져 있는지 입증된 셈이었지만, 그걸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적 성향이,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느 당을, 심지어는 그 당의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가가 대인관계의 지속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가 되고 있다. 회사처럼 비자발적 대인관계에선 종교와 함께 정치 주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비즈니스 에티켓의 기본이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오면 순혈주의는 더 강화된다. 포스팅이나 댓글에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이면 친구를 끊거나 심지어 차단해버린다. 시간이 갈수록 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의 포스팅으로 채워진다. 페이스북만 보면 나는 언제나 정치적 담론의 주류에 서 있다.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선 인간과의 싸움에서 AI가 승리해 인간은 진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AI가 조작한 가상 현실 매트릭스 속에서 노예처럼 산다. 페이스북에선 AI가 하던 일을 유저의 자발적 행동과 SNS의 알고리즘이 합작해 해내고 있다. 이것조차 AI의 조종일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 색깔이 다른 안경을 쓰고 그 안경으로 자기 진영의 정보만 받아들인다. 다른 시각, 다른 정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수록 진영의 환영은 뜨겁다. SNS나 포털 등은 사용자의 경향성을 재빨리 파악해 ‘진영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비눗방울 같은 매트릭스 안에서 거침없이 안전하게 정보를 소비·생산·유통한다. 
 
작년 대선 때 주요 정당의 정치인들이 매일처럼 엄청난 양의 선거운동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런 ‘페북질’은 득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알리바이만 챙기기에 급급한 행태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온통 우리 편으로 매트릭스돼 있는 페이스북에 공들일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손 맞잡고 호소하는 것이 제대로 된 운동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매트릭스를 빠져나오면서 이 매트릭스로부터 인류를 구해낼 영웅을 찾는다. 그렇게 선택된 네오는 매트릭스를 가로지르며 AI가 보낸 스미스 요원과 혈투를 벌이고, 죽음의 위기에 몰리기도 하지만 결국 매트릭스에 자아를 지배당하지 않는 방법을 깨닫는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진영 전투’는 오늘도 쉼 없이, 끝없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가 총칼로 하던 ‘패싸움’을 ‘말싸움’으로 바꾼 것이라고 하지만 그 대의명분과 목표는 사회 통합이다. 지금보다 민주주의가 덜 성숙한 시대에도 강고한 진영의 성채만 양쪽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이고 양쪽을 넘나드는 중간 지대가 희미하게 존재했는데, 이제 그 자취마저 사라졌다.
 
싸우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싸우되 최소한의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는 남겨두면 좋겠다. 잘 싸우기 위해서도 매트릭스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알약 두 개를 내민다. 매트릭스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빨간색, 기존의 현실로 되돌아가려면 파란색. 네오는 빨간약을 삼킨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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