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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폭정의 전초, 정치보복과 사이비 과학
입력 : 2023-02-27 오전 6:00:00
1930년대 초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운용하던 나라였다. 이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은 유럽의 어느 지역보다 전문직 진출 비율이 높았으며,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34년에 나찌의 집권으로 출현한 제3 제국은 이제껏 독일의 정신문화에 내장된 높은 지성과 품격을 파괴하면서 반문명의 길로 폭주했다. 이후 자행된 히틀러의 자국민 살해와 유대인 학살은 가장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 야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인은 사이비 생물학자와 지정학자들이다. 인간을 열성과 우성으로 구분하는 사이비 우생학, 독일인의 생활권, 즉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동방으로 확장하자는 사이비 지정학이다.
 
두 개의 비과학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커서 2차 대전 이후 생물학과 지정학은 학계에서 금기시되는 시절이 있었다. 특히 소련은 생물학이 나찌의 학문이라고 배격하면서 그 자리를 정신분석학으로 대체했다. 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 운동가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던 이유가 바로 정신의 비정상성에 대한 교화의 필요성이다.
 
그런 소련을 보면서 미국에서 심리학은 금기의 학문이 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 정부는 중공군의 포로가 된 미군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비방하는 행적을 보였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를 탐구하면서 다시 미국에서 심리학이 부활했다. 이 과정에서 슬며시 지정학도 부활했다.
 
어떤 학문이나 사상이라도 잘못 남용되면 그것처럼 인간에게 큰 해악을 미치는 것도 없다. 아무리 선의로 탄생한 사상이라도 폭주하는 권력이 되면 순식간에 흉기로 돌변한다. 사상은 멀쩡한 공동체를 적과 아군으로 양분하는 마술을 발휘하고 희생양을 찾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당연히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UAE에서 우리 장병에게 “이란은 적”이라고 했다. 파업한 화물연대에 대해 “북한 핵보다 위협적인 존재”이며 건설노조는 “건폭(건설 조폭)”이라며 이 둘을 묶어 “자유의 적”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기 편에도 그런 말을 구사했다.가장 섬뜩한 장면은 정권 창출의 창업 동지인 안철수 의원에게 “국정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낙인찍은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적을 남발하는 배경에는 무언가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사고체계가 작동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한국에서 별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1930년대의 독일이 바로 그랬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세상을 적으로 보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시장 권력의 만능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변형된 이데올로기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다.
 
어떤 사상이든 공론의 용광로에서 낱낱이 분석되고 검증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가 마비되고, 웬만한 정책은 소통과 협의가 아니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극단적 선택을 막는 민주공화정의 방화벽이 위태롭다는 점을 드러낸다.
 
나는 김누리 교수의 “한국에서 파시즘이 잉태되고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면 이 나라는 극단을 향해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괜한 우려 아니냐고? 지난 23일에 진행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에 대한 압수수색을 보라. 저서에서 정권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무자비하게 정치 보복하는 행태가 폭정의 전초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지금은 사이비 사상을 물리칠 이성과 용기, 즉 과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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