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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
입력 : 2023-03-02 오전 6:00:00
얼마 전 친구로부터 챗GPT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 받았다. 화제의 인공지능 챗GPT와 누군가가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였다. 거기엔 처음 들어보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역사 속의 비극적인 10개의 사건을 뽑아달라는 요청에 챗GPT는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이라는 사건을 목록에 포함시켰다. 챗GPT가 묘사한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1392년 즉위 후 태조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던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에게 과세를 시행하려 하나, 그들은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은 곧 진압되고 개혁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낯선 기계의 황당한 답변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챗GPT가 이런 종류의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 일은 흔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챗GPT에게 어떻게 더 재밌는 답변을 끌어낼 것인지를 궁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활기가 넘친다. 이 기계의 자연스러운 문장 생성 능력은 놀라운 과학적 성취임이 틀림없지만, 이 능력의 근본은 계산을 통해 한 단어 다음에 올 그럴듯한 단어를 잘 고르는 데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문장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것이 기계 밖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챗GPT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대동여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대동여지도를 만든 위인 김정호의 비극적인 영웅담을 들으며 친구들과 함께 안타까워하던 순간들을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고독한 선각자인 김정호는 전국을 반복해 답사하고 백두산도 여러 차례 오르내리는 고난 끝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후 그는 나라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옥에 갇혀 죽는다. 이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는 9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이 영웅담의 기원은 1925년 동아일보에 실린 최남선의 논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남선이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소개했던 이야기가 뼈대가 되어 이후 여러 사람에 의해 상상력이 더해지고 살이 덧붙여져 그럴듯한 영웅서사로 완성되었다. 이야기는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교과서에 실렸으며,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전승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은 이와는 다르다. 이야기의 주요 요소인 전국 답사설, 백두산 등정설, 옥사설은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을 돌며 측량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도제작자와 지리학자들에 의해 축적되어온 자료를 최대한 모으고 활용하여 더 정밀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길 위가 아니라 방구석에서 지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진실에 가깝다. 자세한 논의와 자료는 이기훈의 '근대 신화의 역설 -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경우 (역사비평 123호 2018)'을 참고하기 바란다.
 
인공지능이 쏟아낼 거짓 정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 간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늘 우리의 곁에 있어 왔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는 무언가를 언론에서 봤다고, 선생님한테 들었다고, 심지어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해도 결국은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세계에 대한 경험적 사실의 서술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건 결국은 그 기원까지 따져봐야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확인의 과정을 더 쉽고 투명하며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대동여지도 덕에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어진 질문이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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