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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강제동원 해법, 문희상안 밀었더라면
입력 : 2023-03-13 오전 6:00:00
“제3자 대위변제 아이디어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민주당의, 문희상의 아이디어다. 윤석열 정부가 누구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던 폭탄 처리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종 발표한 강제동원 해법을 두고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말이다. 주취 사고를 친 사람이 술자리 주선자를 탓하는 꼴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2019년 12월에 제시했던 방안과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천양지차다. 
 
첫째, 문희상안은 일본의 기업과 정부의 기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른바 ‘2+2+α’, 한·일 기업(2)과 양국 정부(2)의 기부금, 국민의 자발적 성금(α)을 모아 새로 재단을 설립하는 안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한국 기업만 남은 ’1+0‘ 방안이다. 둘째, 문희상안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 대위 변제의 토대를 입법으로 마련하는 기획이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안은 달랑 재단 정관을 개정해, 법적 분쟁의 소지를 보다 크게 남겼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문희상안에 대해서도 반대할 수 있다. 다만 곁에서 패스를 받아줄 동료(변호사, 시민운동가)도 필요할뿐더러, 빈 공간을 노리고 달리는 동료(정치인, 외교관)도 있어야 했다. 일본의 정부와 사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지만 변경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희상안은 피해자와 양국 관계를 다같이 최대한 고려한 방책이었다. 
 
물론 문희상안 역시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아집에 막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안부터 밀었더라면, ‘현금화 강행’과 ‘배상 포기’ 둘 중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안간힘을 다해 접근했지만 일본이 죄다 틀어막았다. 어쩔 수 없이 최종 결단을 내린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해자나 국제사회 앞에서 최대한 명분을 획득하는 것이다. 문희상안은 Y자 갈림길을 만나기 전에 갔어야 할 길이며, ‘중도(中道)’를 넘어 ‘정도(正道)‘에 가까웠다. 
 
윤석열 정부는 노력하지 않았다. 일본 가해기업의 도의적 지원은 물론이고 사죄조차 없는 이 결과는 ‘하다하다 안 돼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 애초부터 정해놓은 답이었다. 피해자의 분통을 터트려놓고 대국민 사과도 없이 자화자찬만 하고 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를 탓할 자격이 없다. 마무리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기권패 할 궁리부터 해놓고선 선발 투수를 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떤가. 여권 내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협상력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일본 자민당의원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사과하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는데, 50명도 아니고 100명이 넘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대통령실 엉덩이 뒤에 숨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 파병을 결정할 때 고의적으로 파병 반대자 역할을 맡았던 차지철 당시 의원만도 못하다. 
 
민주당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베 정부가 수출규제 카드를 집어들 때 문재인 정부는 한일 양국 기업이 참가하는 ‘1+1’안을 꺼냈었다. 이것도 어차피 대법원 판결 그대로 이행하는 것은 아니거니와, 한일 정부의 책임 측면에선 문희상안보다 못하다. 그랬으면서도 다른 이의 타협안 제시에는 ‘토착왜구’ 딱지를 붙이며 죽창가를 부르는 이중인격을 보였다. 당연히 지금은 현 정부와 여당을 먼저 규탄하고 더 큰 책임을 물려야 한다. 다만 반성 없는 야당이라면 정부 견제의 소임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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