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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치가 가야 할 길, 다양성의 힘
입력 : 2023-03-14 오전 6:00:00
사마천의 <사기>에는 중국 전국 시대 다양한 인재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닭 울음 소리를 기막히게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내며 도둑질을 잘하는 사람 덕분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계명구도(鷄鳴狗盜)와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파서 위기에 대비한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의 고사성어 유래이기도 하다.
 
맹상군은 신분의 귀천이나 학식의 유무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누구든지 재주가 있으면 빈객으로 우대하는 인재 등용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건지고 정치적 입지도 키울 수 있었다. 
 
2천 년이 지난 후 맹상군의 고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얼마 전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신임 임원들에게 “다양성이 존재하는 조직은 생산효율이 20~30%가량 높다” “신임 임원은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관계를 만드는 역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고 밝혔던 것도 그 단편일 뿐이다. 국내 기업들은 조직 내 ‘다양성’을 키워드로 기업 문화 개선에 힘쓰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수년 전부터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오로지 기업 전반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모든 구성원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었으나, 무한경쟁 시대에는 다양성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경영진의 성별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평균 이상의 수익성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리더십을 가진 팀이 신제품을 개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연구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기업이든, 정치이든, 직면한 위기는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개 도둑 흉내와 닭 울음소리, 교토삼굴의 혜안을 가진 숨은 인재들을 담아낼 수 있는, 포용과 다양성이 그 조직의 생존을 결정하는 힘이 된다. 
 
얼마 전 여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일색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고, 국회 과반을 넘는 거대 야당은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지도부 교체론으로 혼돈에 쌓여있다. 
 
여야 모두 임계점을 넘어버린 일방적인 단 하나의 목소리 때문에 국민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다. 새 지도부가 시작된 첫날부터 패자에게 다름과 다양성의 포용의 에너지가 아니라 배제와 축출의 저주를 말하거나, 자신의 측근 5명이 사망해도 아무런 책임감이나 미안함도 없이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당 전체의 정치 탄압으로 바꿔버린 당 대표의 끝나지 않는 권력 보전의 욕망을 보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정치로부터의 소외를 선택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야 모두에서 노정되고 있는 폭력적 일방주의와 몰염치한 민심 이반 앞에서, 어쩌면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낙담으로 희망을 잃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곳에서,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 잘못은 정치가 했는데 정작 피해는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고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어렵게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민 총의에 따른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권력이 권력을 위해 만들어내고 싶어 했던 최악의 결과물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주권자인 국민은, 주인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여야 각자의 당내 민주주의 위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필자는 얼마 전 끝난 여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했었다. 적어도 여당만이라도 먼저, 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포용, 상식과 절차적 정당성 등 건강한 당내 민주주의를 앞장서서 지켜내면, 야당도 정신을 차리고 상식적인 정치의 궤도로 뒤따라 올라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오로지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마지막 한 발짝을 더 내딛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여당 내에서 다름과 다양성의 인정과 민심의 포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이라는 개혁4인방,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당 안에 정치 변화의 흐름이, 얼음장 밑에서도 물이 흐르듯, 당당하고 꾸준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인 다양함을 대변했던 사람들을 낙인찍고 내쫓는다고, 그 변화의 흐름이 바뀌는 일은 결코 없다.
 
포용과 다양성을 담은 건강한 정치야말로, 보수와 진보 전체의 생존을 위한 힘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생존을 결정하는 힘이 될 것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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