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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수법 고도화…진화 수법 '천태만상'
뇌전증·우울증 환자인 척 브로커·의사와 짜고 범행
입력 : 2023-03-13 오후 5:20:35
 
 
[뉴스토마토 윤민영·김하늬 기자] 브로커와 짜고 뇌전증 환자인척 공문서를 꾸미는 등 병역 비리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신체검사 전 단계에서부터 뇌전증을 위장해 병역을 면탈하는 등의 수법인데, 범행에는 연예인과 공무원도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거액을 받고 맞춤형 병역면탈 시나리오를 만들어 범행을 주도한 브로커 2명, 사회복무요원이 정상 출근을 한 것처럼 가짜 공문서를 꾸민 공무원 5명, 가짜 환자 행세를 한 병역 면탈자 109명, 공범 21명 등 137명을 적발해 기소했습니다. 이 중 브로커 구모씨(46)와 김모씨(37), 래퍼 나플라(30·본명 최석배)와 출근부를 조작한 공무원 등 7명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13일 이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찰은 병역면탈 사건 수사과정에서 지자체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업무와 관련한 조직적 병무비리 단서를 포착하고 지난 3개월 간 집중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사팀은 이들로부터 범죄수익 16억147만원 전액에 대한 추징보전 조치를 완료했습니다.
 
연예인·운동선수도 뇌전증 위장해 병역 면탈
 
수사팀은 브로커가 마련한 허위 뇌전증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병역을 면탈한 병역의무자 108명을 적발했습니다. 여기에는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28·OK금융그룹)씨, 배우 송덕호(30·본명 김정현)씨, 래퍼 라비, 의사, 프로게이머(코치) 등도 포함됐습니다.
 
면탈자들은 뇌전증 환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병무청을 속여 병역을 감면 받은 혐의입니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 신체검사 전 단계에서부터 뇌전증을 위장했습니다.
 
브로커들은 발작 등 뇌전증 증상을 거짓으로 꾸며 의료기관에서 허위진단서 등을 발급 받아 병무청에 제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면탈자와 브로커 간 16억원에 달하는 돈이 오갔습니다.
 
한의사와 대형로펌 변호사 등 20명도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들은 면탈자들의 발작을 목격한 것처럼 병무청을 속이는 대가로 브로커에게 대가를 지급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전자기기 사용하다 발작한 척…119 허위신고도
 
브로커와 병역 면탈자는 보호자와 환자로 역할을 나누고 진료기록을 관리하는 등 1~2년 간에 걸쳐 철저히 범죄를 준비했습니다. 뇌파 검사 등에서 뇌전증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은 때에는 4급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신체검사일 기준 1년 이상, 5급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의 치료 내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휴대폰 게임 등 장시간 전자기기 사용 중 갑자기 발작이 발생했고, 또 이를 목격한 것처럼 의료기관에 허위로 병증을 호소하는 범행 시나리오를 짰습니다. 전자기기 사용 시 광자극이 뇌를 자극해 발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료계 지식에 착안한 겁니다.
 
나이, 입영 연기일수 제한 등으로 신속한 군 문제 해결이 필요한 경우는 119 허위신고 후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직행해 범행기간을 단축했습니다. 119 및 응급실을 이용하면 병무용진단서를 발급하는 대형병원 의료서비스를 곧바로 이용할 수 있어 병역 면탈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습니다.
 
면탈자는 최종 약물검사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오도록 검사 직전에 실제 약물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도 첫 병역판정검사일인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병역판정 대상자가 현역대상 판정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해·고의 탈골·발기부전제 주입…진화하는 면탈 수법
 
세월이 흐를수록 병역 면탈 방법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2000년 초반에는 일반적인 병역기피 사례로 문신과 자해 등이 많이 적발됐습니다. 당시 병무청 자료 '문신 관련 병역 면탑 현황'에 따르면 2003년 이후 2007년 8월까지 병역 면탈과 기피를 목적으로 문신, 자해를 해 적발된 사례는 228건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본태성고혈압과 신장질환도 주요 병역기피 사례로 많이 악용됐습니다. 2004년 신장질환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사례만 해도 134건에 달했고, 본태성고혈압 적발 사례는 37명이었습니다.
 
본태성고혈압 병역면탈 행위는 물리적 시술과 약물 투입 없이 신체특정부위에 순간 힘을 줘 혈압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신장질환은 소변검사에서 약물 등을 써 사구체신염과 신증후군 등 신장관련 질병환자로 병역 면제를 받는 방법입니다.
 
2010년대부터 면제 시도 방법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2014년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어깨 관절을 고위로 파열시키거나 고의로 어깨를 빼 습관성 탈골증으로 위장하는 등 어깨 질환이 면탈 수법으로 많이 이용됐습니다.
 
이외에도 작두로 손가락을 절단하거나, 스스로 발기부전제를 주사한 뒤 양쪽 고환과 전립선을 적출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0년 후반부터는 정신이상자인 척하거나 병원 진료 시 거짓 증상을 호소해 조현병 진단을 받아 5급 판정(전시근로역) 받았다가 직장에서 정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적발돼 고발되는 등 수법도 지능화됐습니다.
 
면탈 의심자 색출 강화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를 계기로 병무청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추가 병역 면탈 점검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병무청은 향후 병역면탈 의심자 추적관리 고도화 및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1단계로 병역면탈 의심자 데이터 추적 관리를 고도화해 병역 이행 단계별·질병별·의사별·지역별 이상 징후를 분석합니다.
 
내년에는 2단계로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4~6급 판정자의 자격·면허 취득 정보, 범죄이력, 병역처분 변경 신청 이력 등을 종합해 면탈 의심자를 색출합니다. 4~6급 처분을 받은 연예인·체육선수 등 병적 별도관리 대상은 의사·법조인 등 전문가가 참여해 병역이행 과정을 검증하고, 병역처분 후에도 병원진료·취업·사회활동 등 개인 이력을 일정 기간 추적합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병무 전담 형사부(형사제5부)를 중심으로 병무청의 점검 결과를 함께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병역 면탈 범죄를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상엽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가 13일 오전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병역면탈 및 병무비리 사건 종합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김하늬 기자 min0@etomato.com
 
윤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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