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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비출산 권하는 사회
입력 : 2023-03-20 오전 6:00:00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날이 풀린 탓인지 인파가 북적였고 거리에는 전반적으로 활기가 돌았습니다. 지난해 참사 이후 오랜만의 방문이었는데, 내심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상권이 죽어 있거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렇지만 바로 이어서 이게 가능해? 이럴 수가 있어? 같은 의구심이 따라왔습니다. 3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인데, 불과 몇 달 만에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그럼 대체 언제까지 슬퍼하란 말이냐” 혹은 “참사가 난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극과 별개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상을 버티거나 견디며 살아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날 이태원에서 본 풍경은 그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를 떼는 듯한, 쏟아진 얼룩을 말끔히 닦아낸 것 같은 생경한 풍경과 공기.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다짐하는 분위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이태원 거리를 걸으며 참사로 사망한 159명의 유가족과 부상을 입었던 197명의 시민들은 지금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던 가족이, 동료가, 친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위로는커녕 비난과 공격을 받은 상황을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고는 있을까요.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테러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사람이 무력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본 적이 있을까요. 그 대상이 내가, 나의 가족이,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누가 놀러 나가래?” “누가 그렇게 붐비는 데 가래?”와 같은 말은 무책임합니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0.78로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정부는 호들갑을 떨며 원인을 분석하겠다고 나섰지만 제 눈에는 너무도 명확해 보입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사람을 낳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니까요. 일주일에 52시간도 모자라 7일간 쉬지 않고 90.5시간 일해도 된다고 법을 개정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일하다 과로로 죽어도 일한 사람의 잘못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휴일에 죽으면 “놀다가 죽었다”고 비난하는 세상에서, 도심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죽어도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려도 가해자가 부와 권력을 지니면 처벌받지 않는 세상에서, 어른인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 아닐까요?
 
평생을 모성 연구에 헌신한 인류학자 새라 블래퍼 허디는 저서인 <어머니의 탄생>에서 암컷은 새끼의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번식을 억제하고 자동으로 출산율을 조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개 암컷은 “자손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는데, 생존이 어려우므로 아예 번식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지요. 저는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는 사라지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생명을,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강력한 적신호에 다름 아닙니다.
 
한승혜 작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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