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하면서 처음 1명대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작년에는 0.78명으로 다시 한번 역대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진심으로 나라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러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지난 28일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했습니다. 대통령이 저출산위 회의를 직접 주재한 건 7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등 노동 약자 다수는 현재 법으로 보장된 휴가조차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출산·육아하기 좋은 문화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정책만을 가지고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왜 거꾸로 가고 있는 걸까요? 고용노동부가 바쁠 때는 최대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내놓은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자 윤 대통령도 "연장 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보완 방안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국민의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근로시간제 개편을 69시간이 너무 길면 좀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물건값 흥정하듯 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출산·육아하기 좋은 문화'는 도대체 어떤 건지, 장시간 노동에도 그게 가능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주 69시간에서 몇 시간을 줄인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장시간 압축 노동 환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기존 주 52시간 체제에서도 매년 500명 넘는 노동자가 과로사하고 있는데 근로시간을 더 연장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안 봐도 뻔합니다. 일과 육아를 어렵게 병행해온 맞벌이 부모들 중 근로시간제 개편이 현실화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입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이 45.2%나 됩니다.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못 쓴다'는 응답도 39.6%로 조사됐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시간까지 늘리면 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우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제 개편 방안은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바쁜 일이 끝나면 쉬는 것도 몰아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돌보는 육아를 몰아서 할 수는 없습니다. 윤 대통령이 정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주 69시간이든 주 60시간이든 근로시간제 개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가 최대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 개편 방안을 내놓자 반발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진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문제는 윤석열이다. 민생 파탄! 검찰 독재! 윤석열 심판!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