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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대의 곡직)법기술자들의 반헌법적 작태
입력 : 2023-04-04 오전 6:00:00
최근 두 사건에 시선이 멈춰 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관련 헌법재판소 판결 부정입니다. 하등 관계없어 보이는 장면에 시선이 머문 건 검사로서 법을 가장 잘 알고 이를 수호한다던 이들이 법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보여준 사건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최대 쟁점이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자발적 기부를 통한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내놓았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한국 기업이 배상금을 지원하는 안을 일본 측에 제시한 건데, 당장 반역사적·반민족적 폭거라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털끝만큼 가벼이 여긴 윤 대통령 해명은 “과거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격을 뭉갠 행위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우려되는 건 대법원 판결을 손바닥 뒤집듯 부정한 대통령의 모습이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설득을 구하는 것은 물론 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태도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업의 기부금 갹출도 문제입니다. 마치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정권이 ‘일해재단’을 설립하면서 기업에 헌납을 요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 발상이 참 놀랍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를 ‘금전적 변제’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 한일 정상회담 전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변제가 이뤄지면 논란은 수습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었죠. ‘정치’가 빠진 ‘실증적’인 법조인의 전형입니다.
 
법률가는 실정법의 법체계를 근거로 객관적인 법해석을 합니다. 윤리나 사회, 정치 등은 배제한 채 법 자체만을 형식적으로 대입해 판단하는 거죠. 법학에선 이를 법실증주의라고 부릅니다. 반면,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이해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곧 말의 예술이라고 불립니다. 설득의 힘을 극대화한 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설득에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이 과정이 민주주의인 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은 좋은 법조인도, 훌륭한 정치인의 모습도 보이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대놓고 무시한 건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장관은 검찰수사권 축소 법안이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존중의 뜻을 표하면서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검찰수사권 유지를 위한) 시행령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졌다”는 억지까지 부렸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5대 4로 결정된 것에 대해선 “재판관 9명 중 4명은 청구인 적격을 인정했다”고 강변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다수의견이 법정의견으로서 효력을 갖습니다. 때문에 9대 0이든 5대 4든 그 효력은 같습니다. 검사 출신 법무부장관이 이를 모릴 리 없지요. 그럼에도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발언은 국민을 진영으로 갈라놓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헌법을 내세우고 법치를 강조하던 이들이 법을 유린하는 작태를 우리는 적지 않게 봐왔습니다. 한낱 법기술자들이 입맛에 맞게 법을 재단하고 농락하는 모습도 쉬이 경험했습니다. 법의 그물망을 치고 먹잇감을 낚으려는 법조(法釣)기술자들, 우리는 그런 자들을 ‘법비(法匪)’라고 부르곤 합니다. 비적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이들이죠.
 
나라를 일제에 팔아넘긴 ‘을사오적’은 모두 법관 출신입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평안남도관찰사를 지내면서 평안남도재판소 판사를 겸했고, 외부대신 박제순은 법부대신(지금의 법무부장관)을 역임했습니다. 군부대신 이근택은 평리원재판장(지금의 대법원장)을 지냈으며, 내부대신 이지용도 법부대신과 평리원재판장을 겸했습니다. 농상공부대신 권중현도 법부대신을 거쳐 농상공부대신에 임명돼 을사늑약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죠. 
 
법과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던 이들, 법치를 강조하며 정의를 자처한 이들이 실상 법을 안다는 이유로 손쉽게 이를 농간해왔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무시나 한 장관의 헌법재판소 판결 불복에서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고 하면 과한 걸까요. 이런 식의 태도라면 혹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이 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법치를 내세우고 헌법을 들먹이던 그들, 대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요.
 
정찬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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