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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현장에는 답이 없다
입력 : 2023-04-07 오전 6:00:00
퇴근길 공동현관에서 종종 구정 소식지를 집어 온다. 큼직하게 표지에 박힌 '현장에서 답을 찾다'라는 모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문장을 줄여 '우문현답'이라고 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보편적 언어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현장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 이러한 말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규제 개혁의 시범으로 산업단지의 길을 막던 전봇대를 뽑아냈던 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원한 해결책이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규제 개혁의 보편적인 상황에서도 모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현장행정과 전시행정의 거리는 멀지 않다. 시장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소상공인의 고충에 대한 해결책이 즉각적으로 나올 리 없다. 문제의 원인은 때로 매우 깊고 구조적이다. 정치인이 마주할 난제란 실은 대체로 그렇다.
 
나이팅게일은 현대 간호학의 시초로 유명하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현장은 크림 전쟁 시기 터키의 야전병원이었다. 당시 영국은 동맹국과 함께 흑해 북쪽의 크림반도 해안에서 러시아와 대립했다. 다친 병사들은 배에 실려 흑해를 건너 터키 스쿠타리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수많은 병사가 이곳에서 죽음을 마주한다.
 
나이팅게일은 1854년 11월 38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터키에 도착했다. 당시 그에게는 병원의 위생을 개선함으로써, 당대의 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스쿠타리는 이를 대규모로 시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1855년 초기는 이송된 환자의 30~40%가 사망하던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 다급한 현장에서 그는 체계적인 통계 작성과 기록 관리를 시작한다. 행정가로서의 수완도 발휘하며 병원의 위생 개혁을 진행한다. 1855년의 하반기엔 환자의 사망률이 2%대로 떨어지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환자를 씻기고, 새 환자복을 제공하고, 환기를 시키고, 침대 시트를 교체하는 조치는 오늘날엔 상식이다. 하지만 당시는 세균이 발견되기 전이었고,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크게 부족했다. 그의 위생 개혁은 돌아보면 병원에서 전염병의 전파를 억제하는 조치였다.
 
환자의 개선된 생존율이 위생 개혁의 결과라는 것을 모두가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군 관료와 군의관들에게 이는 많은 병사들의 사망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들의 적대적 태도에 맞서, 위생과 관련된 조치의 성과를 증명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과업이었다.
 
전쟁 이후 그는 현장에서의 기록을 토대로 방대한 통계 보고서를 작성한다. 전쟁터에서의 심한 부상으로 배조차 타지 못한 병사들의 사망률이 이송된 병사들의 개혁 이전 사망률보다 낮다는 것, 영국에 있는 군 병원의 사망률이 개혁 이후의 스쿠타리보다 더 높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대다수의 병사가 전투가 아닌 막을 수 있던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의 통계적 증명이었다.
 
통계를 시각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선구적인 작업은 많은 사람이 복잡한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영국의 정치인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했고, 영국군의 위생 개선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병원 내의 감염을 통제하기 위한 많은 관행이 스쿠타리에서 기원했다.
 
나이팅게일의 현장엔 다른 장교들과 의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답을 찾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긴박한 곳에서 하루하루 통계를 관리하며 일지를 작성하는 일은 너무나 한가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도 무엇보다 처절한 현장의 일이었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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