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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억만장자들이 저널리즘을 구원할 수 없는 이유
입력 : 2023-04-12 오전 6:00:00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야르가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한 <퍼스트룩미디어>란 뉴스 기업이 있었다. 이 회사 기자였던 캔 실버스타인이 <폴리티코>에 왜 이 회사를 퇴사했는지에 대한 글을 썼는데 제목이 “저널리즘이 죽는 곳”이었다.
 
“피에르는 자신이 저널리즘과 수정헌법 1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하지만 그는 저널리즘에서 뛰어난 실적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기술 비즈니스에서 좋은 타이밍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이다.”
 
물론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사람이 훌륭한 언론사가 경영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버스타인의 말을 들어보면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존재했던 것 같다. 
 
“회의 도중에 내가 ‘저널리즘은 로켓 과학이 아닙니다’, 이렇게 소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짜증이 난 피에르가 이렇게 말했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을 찾는 것은 로켓 과학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기사를 만들지 않고서는 독자를 만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죠.” 
 
기획을 잘 해서 기사 퀄리티가 높아지고 회의를 잘 해서 독자들이 몰려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애초에 상품이 좋지 않고서는 아무리 마케팅이 뒷받침해줘도 잘 팔기 어렵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사들이 구독 모델에 목을 맸지만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미디야르는 이베이에서의 고객 관계(CRM) 경험을 뉴스 유료 구독에 접목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문 독자와 쇼핑몰 회원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오미디야르는 “두려움 없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버스타인은 “저널리즘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기사에 개입했고 기자들이 경영진 눈치를 보고 그들을 화나게 만들까봐 두려워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퍼스트룩미디어>의 실패는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이 단순히 억만장자의 뭉칫돈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2억5000달러에 인수한 <워싱턴포스트>도 비슷한 사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한때 어깨를 겨눴던 <뉴욕타임스>가 일찌감치 1000만 구독자를 넘어선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300만 명 문턱을 넘지 못하고 250만 명 수준까지 추락했다.
 
<뉴욕타임스>가 ‘스타 기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선수’들의 경쟁력과 상품의 퀄리티에 집중한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콘텐츠 관리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와 인프라에 투자를 집중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뉴욕타임스> 발행인을 세습하고 있는 아서 설츠버거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저널리즘은 놓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게 바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결정적 차이였다. 
 
세계적으로 신문은 원래 부자들의 소유였다. 돈이 많이 들고 이익은 많지 않은 비즈니스인데다 진입 장벽이 높아 초기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스 산업이 사양 산업에 들어서면서 과감한 기술 투자와 플랫폼 경쟁력이 생존의 변수로 등장했고 자본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비영리 언론 <마더존스>의 편집국장 모니카 바우어라인은 “많은 언론인들이 우리에게 남은 비즈니스 모델은 억만장자 뿐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형수의 조크 같은 것”이라면서 “블룸버그와 베조스에게 맡기기에는 민주주의가 너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위기의 저널리즘에 자본 투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자본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억만장자가 투자한 언론사 가운데 오히려 <프로퍼블리카>가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은 부자들의 호의가 아니라 처절한 생존 경쟁과 시행 착오를 통해 겨우 이르는 것이다.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전 미디어오늘 대표)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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