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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기는 어디서?
입력 : 2023-04-13 오전 6:00:00
연초부터 지속되는 무역적자가 심상치 않습니다. 식량과 에너지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외화 조달이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무역적자 극복의 핵심은 반도체 산업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재패하고 중국에 그 동안 막대한 반도체를 수출해 왔지만, 최근 심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과거 일본과의 치킨 게임에서도 과감한 투자로 극복한 우리 업계는 400조원 이상을 투자하여 경기 남부 지역에 세계 최대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위기상황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발표입니다.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핵심 이슈는 전력 공급 문제입니다. 반도체 분야는 기술 경쟁, 특히 미세 선폭 가공 경쟁이 치열합니다.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저전력-초고속 연산 반도체가 있어야만 가능니다. 원자 하나 굵기의 미세 회로로 이루어진 시스템 반도체가 아니면 고객 요구 조건을 맞출 수 없습니다. 현재는 대만 TSMC만이 이 정도 수준의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 국내 업계는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당 5000억원이 넘는 EUV라는 특수 장비를 향후 수백대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 장비는 파장이 짧은 고에너지 극자외선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복잡한 장비인데, 전력 사용량이 기존 장비 대비 10배 이상입니다. 이로 인해 신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는 막대한 신규 전기 공급을 요구합니다.
 
 
신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하여, 향후 수도권 반도체 시설에 신규로 10GW 규모의 전력 추가 공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발전 원가가 저렴한 대형 원전, 석탄 발전소는 해안가 발전소에 위치하는데,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서 전기를 주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는 발전 시설과 전력 소비처가 멀리 떨어져 있어, 대규모 송전망에 의존하는 [남전북송] 체계이지만 신규 송전망 건설은 아주 어렵습니다. 강원도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신규 송전망은 준공시점을 넘었지만,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면서 기존 송전망의 보강 투자도 필요하고, 수도권의 전력 사용량이 늘면서 기존 시설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전이 작년에 30조원 이상의 적자를 보았고,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10GW의 신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는 투자를 감당하기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공장은 초정밀 공정 기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전기의 품질이 매우 좋아야 하며, 전력 공급의 안정성도 중요합니다. 반도제 공장에 1초라도 정전이 발생하면 수백 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재생에너지로 전력 사용량을 충당하겠다는 RE100 목표 선언했으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도 지속적으로 줄여 가기로 서약한 상태입니다. 국제 경쟁을 감안하면 반도체 신규 단지에 공급하는 전기의 비용도 적절한 수준이어야 하고, 탄소배출량도 낮춰야 하지만 과거처럼 한전의 적자나 타 전기 소비자들의 교차보조를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므로 도움을 주고, 지원을 해야 하지만 전기 공급 문제는 시스템적인 특성이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특정 지역의 특정 업계의 필요만 우선 채워주려고 하면 자칫 더 큰 문제가 파생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돈을 잘 버는 회사가 왜 전기는 원가 이하로 가져다 쓰는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물리적 전기 공급 체계나 가격 방식을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렵다면, 수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에 열병합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규제를 풀어주거나, 수도권에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를 건설하여 연계시키거나, 인접한 서해안 석탄 화력 발전소에 원전을 건설하여 재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제한 없이 검토해야 합니다. 어떤 방안이던 기존 발전 사업자들의 이해관계, 주민 수용성,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간단히 결론을 내기는 어렵습니다만, 기존 방식으로 회귀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에 중요한 산업입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전기를 어디서 만들어서 어떻게 공급하느냐는 원칙도 중요합니다. 초격차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전기를 어떻게 공급할지 다양한 방안들을 공론화하여 충분히 토의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절차를 조속히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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