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그닥 잘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온 나날이 있으니 이리저리 따지면 줄잡아 수십편은 봤을 겁니다. 집중해서 보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면 대사도 내용도 기억 속에서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몇몇 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대사가 뇌리에 강렬히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가물거려도 배우가 내뱉는 말과 상황에 들어맞는 장면이 가슴에 비수 꽂히듯 말이죠.
영화 '밀양'이 그랬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2007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 영화를 봤는지도 가물거립니다. 영화관에서 봤는지, TV에서 특집으로 감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른세살 신애(전도연)는 바람을 피우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시댁이 있는 밀양으로 떠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남편 고향에서 새출발을 하기 위해섭니다.
남편 고향에서 아들마저 유괴를 당해 살해됩니다. 살인자는 아들의 학원 원장입니다. 졸지에 남편과 아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신애는 종교를 통해 마음을 달랩니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 수감중인 아들 살해범을 만나죠.
머릿 속에 깊게 남은 대목은 다음입니다. '용서'를 하려는 신애에게 살해범이 말합니다.
"제 영혼은 이미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거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애는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이 용서를 했다구요?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를 합니까. 어느 누가 나 먼저 용서를 하냐 말이에요"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진정성 어린 반성과 사죄에서 비롯됩니다. 말로만 끝나지 않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가 피해자 가슴을 울려야 합니다. 때로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남는 상처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 자세가 논란입니다. 지난해 광복절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했듯 일본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은 맞습니다. 일제 강점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개심도,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해자인 일본은 해방 이후 78년 동안 진정성 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례로 든 유럽은 1970년 독일 빌리 브란트 수상이 피해국 폴란드를 찾아 바르샤바 유태인 대량 학살의 현장에서 헌화를 하다 갑자기 무릎을 꿇어 진정성을 보여줬습니다. 배상에도 적극적입니다. 독일은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 상징물을 사용하면 형법에 따라 처벌합니다.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독도를 교과서에 자신들의 영토라고 교육시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국가 수장이 나서 '과거는 잊으라'고 자국 국민에게 요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일제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습니다. 파괴된 개인의 삶을 '시대가 그랬다'는 말로 덮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 책임감없어 보입니다.
다시 떠오르네요. 영화 대사가. 고통의 인생을 산 그 분들의 울림도 들립니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를 합니까. 어느 누가 나 먼저 용서를 하냐 말이에요"
오승주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