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A업체는 코로나19 이전에 조달청과 공공조달 계약을 통해 자사 화장지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21년부터 펄프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면서 공공조달 계약 당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당초 계약에 따라 제품 가격이 3만원대 초중반으로 설정됐지만 인상분을 반영하면 현재 3만원대 후반 정도가 돼야 판매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가격 갱신이 어려워 A업체는 조달청 나라장터종합쇼핑몰에 판매하던 제품을 '품절' 처리했습니다. 차라리 판매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나라장터종합쇼핑몰 모습. (사진=나라장터종합쇼핑몰 캡처)
가격 조정을 위한 A업체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A업체는 조달청에 원자잿값이 많이 올라 단가를 조정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조달청은 가격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책자로 만들어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조달청은 증빙자료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업체를 소개해 줬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 컨설팅 업체에 의뢰한 결과 한 제품당 증빙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가격은 170만원이었습니다. 비슷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각 제품당 따로 증빙을 모두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A업체를 비롯해 소규모 업체들은 이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품절로 돌려 판매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공공조달 제품의 경우 원가 상승분에 대한 가격 반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납품업체들이 고충을 겪고 있었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내부에서 관련 인력을 마련해 가격 인상에 따른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작은 기업의 경우 자료 증빙 등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조달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괜히 이야기를 잘못했다가 계약이 끊길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납품업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품절' 표기인 셈입니다.
A업체 관계자는 "현재 나라장터 판매는 포기하고 기업 간 거래(B2B)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단가 조정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서 차라리 아예 신규로 계약해서 갱신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와 같은 공공조달 업체의 고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실장은 "공공조달 제품의 경우 가격의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납품업체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수정하고 싶지만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의견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실장은 제대로 된 원가 반영을 위해 사전 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납품대금연동제처럼 납품하기 전 계약 시 원가 인상분에 대한 연동을 계약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기업이 조달청에 요청할 필요 없이 일정 부분 원가가 변동되면 자동으로 대금을 조정해주는 식입니다.
전문가도 가장 좋은 방법이 사전 계약 형태의 표준계약서라고 제안했습니다. 백훈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 가격에 급격한 변동이 생겨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준다면 가격을 변동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면서 "사전 계약 조건에서 표준계약서를 통해 조정을 의무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사실 이런 부분들이 상생의 관점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문제는 매 품목마다 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단체 쪽에서 예가를 산정해서 조정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