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금리 인상기를 거치며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장기업들이 앞다퉈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이자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회사채발행까지 막히자 주주 등을 통한 외부자금 조달을 통해 ‘곳간’ 채우기에 나선 겁니다.
주주배정 유증에 투자자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가대비 저렴한 신주발행으로 주식가치 희석 및 높은 변동성까지 기존주주들이 감당하게 된 탓입니다.
증시 활황에 상장기업 유증 2배 급증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1달간 기업들의 유상증자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유상증자를 진행했거나 유증 일정을 계획한 기업만 86곳으로 전년 동기(36곳) 대비 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유증 목적은 대부분 운영자금 조달 및 채무상환 목적입니다.
특히 86곳의 유증 결정 중 17곳이 주주배정 및 일반공모 방식 유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올해 1~4월 진행된 주주배정 및 일반공모 유증은 7곳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들어 상장기업들의 유상증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지난해 이어진 금리상승의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이자 비용 부담이 늘면서 기업들의 재무 불안은 커졌지만, 올 초 증시 활황으로 주가는 급등했죠. 상장사 입장에선 적은 주식발행으로도 비교적 많은 자금을 수혈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실제 지난해 금리상승으로 기업 조달 여건이 악화하고, 경기가 둔화하면서 상장기업의 재무 상황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상장기업 중 영업손실이 발생하거나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기업의 비중은 유가증권시장 소속 기업이 25.6%, 코스닥시장 소속 기업은 37.6%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재무상황은 더욱 나빠졌는데요. 2022년 중소기업 표본의 47.7%가 영업손실이 발생했거나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장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이 영업을 통한 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상장기업들의 재무구조 악화의 원인으로는 금리상승과 회사채 발행 감소가 꼽힙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의 영향으로 상장기업의 조달비용률이 증가했다”면서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상장기업의 차입금 중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고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감소 폭은 특히 커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주가는 급락…"회사부담 주주에 떠넘겨"
상장기업들의 차입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하자 너도나도 신주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섰는데요. 문제는 유상증자를 결정한 기업들의 주가 급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투자자들은 상장기업들이 주주들에게 회사의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유아용품 전문업체
꿈비(407400)는 상장 4달여 만에 2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증을 결정했습니다. 꿈비는 유증 공시일부터 3거래일간 주가가 15.36% 급락했습니다. 꿈비의 경우 상장당시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는데요. 이번 유증 규모는 IPO 당시 2배에 달합니다. 상장 이후 주가가 급등하자 금융권 차입 대신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해 초 챗GPT 관련주로 언급되며 주가가 급등했던
셀바스AI(108860)와
셀바스헬스케어(208370)도 유증공시 이후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유증공시 다음날 셀바스헬스케어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셀바스AI도 13.75% 급락했죠. 셀바스헬스케어와 셀바스AI는 유증공시 이후 지난 2일까지 각각 41.23%, 23.65% 하락했습니다.
대부분 채무상환 목적…"주가에 부정적"
지난달부터 주주배정 및 공모 유증을 진행했거나 계획 중인 17개 기업의 자금조달 목적은 모두 차입금 상환 및 운영자금 조달 목적입니다.
대성창투(027830)의 경우 타법인 취득(펀드 출자금) 목적이지만, 사모펀드 결성이 주 사업인 만큼 사실상 운영자금 조달로 볼 수 있죠. 뉴인텍, KC코트렐, 클리노믹스, 엔브이에이치코리아, 엘엔케이바이오, 인텔리안테크,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자비스 등 10개 상장사는 자금사용 목적에 채무상환이 포함됐습니다.
김필규 연구원은 “작년에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들이 고금리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유상증자 등 다른 부분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로 주식 수가 늘어날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밖에 없는데 차입금 상환 등을 위한 유증의 경우 주가에 더욱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