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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공급망 재편이라는 위험한 도박
입력 : 2023-06-12 오전 6:00:00
미국의 전략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가 한국과 대만에서 주로 생산되는 것을 위험하다고 말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27일에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반도체의 아시아 편중을 “경제적 위험”이라고 했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대만에서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보도한 바와 같이 미국의 전문가들은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50%가 넘는다고 말한다.
 
설령 중국이 침공하지 않더라도 중국군이 미사일로 TSMC 반도체 공장을 폭격하거나 대만 주변 수역을 봉쇄해버려도 반도체 공급망은 마비된다. 심지어 대만에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까지 제시한다. 실제로 1999년에 대만에서 강도 7.3이라는 역대급 지진이 발생하자 TSMC 반도체 제조공장 5개 중 4개가 멈췄던 적이 있다.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올 것이기 때문에 대만의 반도체 생산은 위험하다는 거다. 같은 이유로 분쟁 지역인 한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이 편중된 것도 위험하다는 논리다. 지난 30여 년간 잘 유지되어 온 공급망이 갑자기 위험하다며 별의별 이유가 다 튀어나온다.
 
이런 주장은 반도체 제조 공장을 미국과 일본에 유치하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크리스 밀러가 「칩워(Chip War)」에서 밝힌 대로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서 스스로 몰락한 나라들이다. 흔히 일본은 1980년대 중반에 미국의 압력으로 반도체 산업을 포기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미국의 견제라는 외부 충격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대비하지 못하고 혁신을 게을리 한 소니, 도시바와 같은 회사의 오만함이 몰락의 진짜 이유다.
 
소니의 아키타 모리노 회장과 이시하라 신타로의 그 당시 공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트랜지스터로 전 세계 가전제품을 장악한 일본이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는 오만한 전망이 실려 있었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자 일본의 반도체는 몰락했다. 미국은 어떠한가.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제 곧 모바일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인텔에 모바일 용 칩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텔은 이를 거절하고 여전히 PC의 중앙처리 장치를 독점하던 자신의 왕국에 안주했다. 이에 중국계 미국인 모리스 창은 대만에 TSMC를 설립하여 자신이 예견한 모바일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도 모리스 창의 길을 걸었다.
 
진짜 혁명이 나타났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이다. 지능의 시대에 고성능 칩의 폭발적 수요를 감당할 대규모 제조 공장과 노하우를 가진 당사자는 삼성, TSMC 정도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이는 심장과 간의 위치를 바꾸겠다는 의사만큼 위험하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산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한 때 혁신을 거부했다가 이제는 공급망을 바꾸겠다는 그 발상이 더 위험하다.
 
간과 심장은 수많은 신경과 혈관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위치를 바꿀 수 없다. 전 세계적인 연결망 속에 있는 반도체 공정도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가 사망에 이르게 될 이 위험한 수술에 세계는 홀린 듯이 빨려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시작된 전쟁에서 딱히 전략이나 비전이 없는 것 같다. 반도체 전략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허망하게 들린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입장이 없으니 말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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