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8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6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지난 2월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무총리와 주요 장관, 광역단체장, 군과 경찰, 국가정보원 직위자가 참석한 가운데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열었습니다. 참석자 면면에서 보듯이 민관군이 국가 방위태세를 점검하는 자리입니다.
회의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및 고강도 도발 위협에 대비한 방호시설 필요성을 논의했습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학교, 정부청사 등 공공시설 건축 시 또는 특정 아파트·상가단지 조성 시 대피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과 평상시에는 이들 대피 시설이 수영장, 도서관 등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범정부적인 지원책들을 토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아파트에 핵·미사일 대피 시설 의무화, 윤 대통령에 보고"라는 제목으로 회의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5월16일 정부는 전국 단위 민방공 대피 훈련을 6년 만에 실시했습니다.
6월2일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혼란과 공포를 겪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서울시가 발령 이유와 대피 장소 안내도 없이 경계경보를 발령해서입니다. 행정안전부가 백령도 일원에 내린 지령을, 서울시가 잘못 확대해석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번에 "진짜로 전쟁 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통합방위회의 결과를 보면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공격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신축 때 핵 방공호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겠다는 이유가 그겁니다.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핵 방공호는 어떤 사양이어야 할까요? 조성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조성 비용은 가구 부담인가요? 정부 부담인가요? 신축 아파트가 아닌 기존 아파트 주민은 어떻게 하나요? 방공호를 완비하면 유사시에 많은 시민이 안전해질 수 있나요?
정부는 핵 방공호 문제를 진작에 검토했습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2008년 '지하 핵 대피 시설 구축방안 설정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국토해양부에 보고서를 냅니다. 북한이 그 무렵 핵실험을 했고 국회가 대책을 요구해서였죠.
보고서에서는 외국 사례 하나로 중국 베이징 지하 성을 소개했습니다. 중소 분쟁이 심각하던 1969년 무렵이었습니다. 마오쩌둥 주석이 소련 핵 공격을 막으려고 지하 방공호를 파도록 지시했죠. 10년 동안 공사해 지하 8m, 폭 2m, 총길이 30km 갱도를 완성했습니다. 군사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2000~2008년에 관광객한테 개방하다가 지금은 폐쇄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노르웨이 지하 대피 시설도 소개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암반이 많아 지하공간을 개발하기 좋다고 합니다. 지하 공간은 난방 효과도 좋죠. 노르웨이는 애초 방어시설에 중점을 두다가 시민 복지시설 용도로 지하공간 개발 목적을 바꾸고 있습니다. 남부 호믈리아 스포츠홀은 연면적 7500㎡로 수영장, 헬스클럽, 사우나를 넣었습니다. 유사시 7500명이 대피할 수 있습니다. 합참이 아파트에 핵 대피 시설을 만들되 평소에 수영장, 도서관으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노르웨이 사례를 참고한 듯합니다.
우리나라 재난관리 전문가들이 종종 노르웨이에 견학 가는데요. 한 전문가는 현지 방문 결과를 이렇게 전합니다. "1960~70년대 동서 양 진영 냉전 초기에 핵 공격을 막으려고 핵 방공호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 뒤 핵무기 위력이 훨씬 강력해졌다. 시민들이 방공호로 막을 수준을 넘어섰다. 대신 핵 군축 협상 같은 대화를 통해 핵 위협이 줄어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르웨이는 시민 복지 쪽으로 지하개발 주안점을 바꿨다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서울 서초동 트라움 하우스 연립주택 단지 지하 방공호도 소개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8년에 트라움 하우스 복층 구조 82.83평을 95억원에 사들였습니다. 대한민국 0.01%만이 산다는 최고급 공동주택이죠. 이곳 지하에 핵 벙커가 있는데요. 벙커는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15kt 원자폭탄을 견디도록 지하 4층에 1t 무게 철문과 80cm 벽 두께로 지었습니다. 실내 면적 40평에 3층 간이침대 20개, 화장실 2칸을 넣어 50명이 한 달 동안 살도록 했습니다.
국내외 조사 결과를 토대로 건설기술연구원은 결론을 내립니다. '500평 규모 표준모델 지하 대피 시설을 바닥면적 10,000㎡ 이상 건물에 설치할 경우 인구 40%인 2천만명이 피난할 수 있지만 건물당 7억원씩, 모두 24조원을 민간 건축주한테 부담시키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 공공시설 중심으로 신규 설치 28군데, 개보수 23군데를 하면 국민 0.05%인 2만8천명이 피난할 수 있다. 비용은 228억원이니 이것부터 하자.'
0.05%만 대피한다니 결론이 허무한가요? 비용이 문제라면 2000만명이 피난하도록 24조원을 정부 예산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요?
지난달 16일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제414차 민방위의 날 서울시청에서 실시된 민방공 대피훈련에 참석해 관련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적이 공격한다는 정보를 미리 통보받는 시간(경보 시간)을 소련은 20분, 미국은 15분으로 잡았고, 건설기술연구원은 좁은 우리나라 국토를 고려해 그것을 5~10분으로 잡았습니다. 미사일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쏜다면 5~10분이 아니라 2분 만에 서울 상공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2분이라면 민간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도로 훈련된 군인도 대피하기 어렵습니다. 제때 들어가지 못하면 완벽한 대피소도 쓸모없죠.
박근혜 대통령 때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핵 공격에는 전면적인 방어가 불가능하고 과도한 비용과 불안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고 주장했습니다(지난해 10월31일 세미나). 민방위 훈련은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피소를 짓고 민방공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핵 위협을 막진 못합니다. 핵 민방위 대피소는 1960~70년 냉전 시대 초기에 유행을 타다가 역사 유물로 사라졌습니다.
핵 위협이 커질수록 해법은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핵미사일 탐지와 요격, 보복능력을 확고히 유지하는 동시에, 상대가 도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대화를 병행해야 북핵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외국 사례를 봐도 군사 핫라인 구축을 비롯한 군비 통제 노력을 통합방위 구상에서 빼놓지 않습니다. 핵 방공호로 시민을 지킨다는 생각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