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맑은 눈의 광인’이란 말이 언제부터인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악역입니다. 이른바 빌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 대부분 험상궂게 생긴 모습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요즘 빌런들, 잘생겼습니다. 예쁘게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눈빛만큼은 섬뜩하고 끔찍합니다. 그래서 풍기는 분위기가 기묘합니다. 강렬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트렌드를 두고 ‘맑은 눈의 광인’이란 말이 나온 듯합니다. 영화 ‘귀공자’를 보면 이런 설명, 반드시 그리고 무조건 수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렇게 멀끔하고 멋진 남자가 생글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주변을 온통 피칠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입니다. 배우 김선호가 이런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귀공자’에서 제목 그 자체인 귀공자를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귀공자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웃는 얼굴로 주변을 초토화 시킵니다. 가장 섬뜩하면서도 끔찍한 건 너무도 맑은 얼굴을 하고 한 남자를 추격하는 겁니다.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귀공자는 귀신같이 찾아내고 쫓아옵니다. 무섭다 못해 비릿한 웃음과 미소를 지은 그 얼굴. 도대체 하나로 귀결되기 힘든 감정을 뿜어냅니다. 이런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 ‘전무’했고 앞으로도 ‘후무’할 캐릭터임에 분명합니다. 그걸 데뷔 이후 영화가 처음인 김선호가 만들어 냈습니다. 참고로 그는 ‘귀공자’ 촬영 직전 개인 사생활 문제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하차를 고려하던 그를 붙잡았습니다. 영화를 보니 왜 그랬는지 충분히 납득됐고 알 것 같았습니다.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김선호, 데뷔 이후 첫 영화 출연입니다. 워낙 잘 생긴 외모로 인해 드라마에선 달콤하고 멜로틱한 캐릭터를 도 맡아 왔습니다. 하지만 ‘귀공자’에선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끔찍한 악역입니다. 물론 반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깜짝 놀랄 이미지 반전입니다. 조금의 예고도 없이 이 정도로 이미지를 반전 시킨 배역 선택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김선호도 걱정을 좀 많이 했었답니다.
“걱정 됐었죠. ‘귀공자’를 언론 시사회에서 기자님들과 처음 봤어요. 근데 진짜 못보겠더라고요(웃음). 사실 드라마에서도 제 연기를 잘 못보는 스타일인데, 영화는 너무 큰 스크린으로 보니 제 눈에는 단점만 보였어요. 저 진짜 보다가 몇 번을 소리지르고 뛰쳐나갈 뻔 했어요. 진짜 영어 하는 장면에선 어휴(웃음). 그나마 옆에 있던 강우 선배가 ‘처음에는 다 그래. 나도 그랬어’라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셔서 겨우 버텼어요. 하하하.”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귀공자’ 속 김선호가 연기한 귀공자란 인물.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굉장히 악한 인물입니다. 보통 배우들은 악역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연기에 대한 스펙트럼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김선호에게도 그런 지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더 큰 이유는 박훈정 감독 때문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배우들이 선호하는 가장 인기가 높은 감독 중에 한 분입니다.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신세계’ ‘마녀’ 등을 너무 재미있게 봤었어요. 배우가 아니라 일반 관객 분들도 감독님 영화는 너무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일단은 연락을 주셔서 만났는데, 전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에 ‘저 할게요’라고 했었어요(웃음). 진짜로 그랬어요. 하하하. 대략적인 내용과 배역 정도는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죠. 하지만 진짜는 그냥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오케이였죠. 저한테는 사람이 제일 중요해요. 그게 박훈정 감독님이기에 시나리오가 중요하진 않았어요.”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오케이’를 했지만 ‘귀공자’ 속 본인이 연기해야 하는 귀공자. 정말 베일 속에 꽁꽁 감춰진 인물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함이 모두 담긴 캐릭터였습니다. 빼어난 실력을 지닌 킬러이고 명품 클래식 수트를 입은 외모. 번들거리는 포마드 헤어스타일. 티끌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 비를 맞기 싫어서 타깃을 그냥 놔주는 성격. 술 대신 콜라만 마시는 취향. 사람 죽이는 킬러이지만 해맑게 웃는 미소. 그럼에도 냉혈한에 가까운 살인 본능 등. 어디서부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진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를 정도였어요. 감독님에게 조언을 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일단 왜 마르코에게 그렇게 집착을 하고 추격을 하는지. 가장 원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했죠. 그때 감독님이 정말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주셨어요. 귀공자가 어떤 에이전시에 소속된 킬러였고 그러다 등을 돌리고 나간 상태고. 자신의 비즈니스 때문에 마르코를 추격하는 데 그걸 지금 즐기는 상태이고. 등등. 진짜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미 설정을 다 하고 계셨더라고요. 그냥 전 설명을 따라가기만 했어요(웃음).”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그런 귀공자의 액션, 정말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일단 킬러 배역이다 보니 총기 액션이 등장합니다. 국내 장르 영화에선 리얼리티 설정상 잘 나오지 않는 액션입니다. 하지만 ‘귀공자’ 속에선 의외로 굉장히 리얼하게 그려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 자체가 ‘추격극’이란 외피를 쓰고 있다 보니 모든 출연 캐릭터가 뛰고 또 뜁니다. 여기에 격렬한 카체이싱과 고공 와이어 등 액션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게 다 나왔습니다.
“우선 총은 제가 군대 조교 출신이라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다만 권총은 처음이라서 반동이라던지 그런 걸 많이 상상하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 노력했죠. 제일 놀라웠던 건 다리 장면인데(웃음). 그 장면에서 제가 감독님에게 ‘여기서 뛰면 안죽어요?’라고 할 정도로 높았어요. 그러니깐 감독님이 ‘그럼 마르코 뭐가 되냐’라고 하셔서 뭐 뛰었죠. 하하하. 와이어를 차고 뛰었는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요. 하하하.”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김선호는 ‘귀공자 촬영 직전 전 연인의 사생활 폭로 논란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었습니다. 출연을 예정했던 다른 작품에서 줄줄이 하차를 선언했습니다. ‘귀공자’ 역시 하차를 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귀공자’가 사실상 하차를 결정한 김선호를 오히려 잡았습니다. 박훈정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김선호를 끝까지 믿었습니다.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 언론 시사회에서 ‘김선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부담을 드리기 싫었어요. 마음 속으로 하차를 결정했었죠. 그런데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이 ‘너만 괜찮으면 우린 그냥 간다’라고 해주셨어요. 정말 예상 밖이었죠. 이미 영화 크랭크인도 좀 미뤄진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제가 그래도 하차를 고집하면 더 큰 민폐가 될 듯하고.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겠다’고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는 기분으로 임했습니다.”
배우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그런 김선호의 열정을 본 것 일까.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자신의 차기작 ‘폭군’에 그를 다시 캐스팅했습니다. ‘귀공자’에서 김선호와 함께 한 김강우도 ‘폭군’에 함께 합니다. 전작에 이어 차기작까지. 감독과 주연 배우가 함께 하는 건 국내에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이후 사실상 두 번째일 정도로 드문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김선호는 ‘폭군’에선 또 다른 결의 재미가 있다며 ‘기대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귀공자’ 촬영 중 후반쯤 저에 대한 믿음이 생기셨는지 그때쯤 ‘폭군’에 대한 얘기를 산책하시면서 조금씩 해 주시더라고요. 당연히 너무 하고 싶었고 기회를 주셨어요. 감독님이 농담처럼 말씀하시는 게, 강우 선배는 워낙 연기를 잘하셔서 캐스팅하셨고, 전 너무 친해서 하셨다고(웃음). 살짝 공개를 하자면 ‘귀공자’는 동적인 느낌이 강하면 ‘폭군’은 정적인 느낌이 아주 강해요. 근데 ‘센’ 수위는 ‘귀공자’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선 더 강해요. 암튼 둘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