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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속 '장애' 읽기)정유정이 자폐라고요? 기자님들, ‘장애’ 공부 좀 하셔야겠습니다
입력 : 2023-06-30 오전 6:00:00
과외 어플로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이 진짜 자폐인으로 보이십니까? 자폐인의 엄마인 저는, 이 황당무계한 말이 아직도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에 실소가 터질 지경입니다. 문제는 뉴스 콘텐츠가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공정보도에 힘쓰는 우리 기자님들, ‘장애’ 공부 좀 하셔야겠습니다. 
 
정유정과 자폐가 연결고리를 갖게 된 경위를 알아봅니다. 지난 1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주변 인물들이 전한 정유정의 몇 가지 행동 묘사를 근거로 그가 ‘자폐적인 성향’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네. 경솔한 진단이었죠. 하지만 전문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진단하는 게 그들 일이니까요. 누군가 “배가 아파요”라고 하면 장염일 수도 있고, 생리통일 수도 있고, 변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진단하는 게 자신들 일이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겠죠. 
 
옆 사람이 얘기해 준 하나의 정보를 알게 됩니다. 마지막 생리가 한 달 전에 있었대요. 아하! 배에 청진기도 대보지 않고 말합니다. “생리통입니다”. 이번 정유정 사건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건 뉴스 콘텐츠 생산자, 그러니까 방송 PD와 기자들입니다. 전문가는 그럴 수 있지만 뉴스 콘텐츠 생산자는 그러면 안 됩니다. 저도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해봐서 잘 압니다. 뉴스 콘텐츠에 나오는 인터뷰이의 멘트는 기자가 의도한 방향대로 실립니다. 
 
영업비밀 하나 풀어볼까요? 기자는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사로 쓰지 않습니다. 맨 처음 뉴스 콘텐츠를 정할 때 ‘기획’ 먼저 합니다. 일명 ‘야마’를 정한다고 하는데요. 야마는 언론에서 쓰이는 단어(일본식 표현입니다)로 그 기사를 어떤 관점에서 쓰겠다는 방향성까지 포함된 개념입니다. 모든 뉴스 콘텐츠엔 생산자의 ‘관점’이 들어갑니다. 
 
이런 식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해도 될 것을, 기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화자를 ‘나쁜 사람’으로 설정할 경우 “~라고 해명했습니다”라고 해서 무의식중에 화자가 변명한 사람이 되도록 은밀한 장치를 하는 것이죠. 
 
이런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 PD 및 방송 이후 정유정과 자폐를 연결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각 언론 기자들에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지금 당신들은 전문가 멘트를 받아쓴 게 아니라 자폐인과 범죄자를 동급으로 생각하는 당신들의 ‘장애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중이거든요. 
 
자폐인은 자폐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타인에 대해 ‘살인을 할 만큼의’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폐인의 에너지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합니다. 때문에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방비합니다. 특수학교에 CCTV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의 자기방어력이 어린이집 다니는 유아들보다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폐인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은 범죄의 세계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서곤 합니다. 얼마나 많은 발달장애인이 크고 작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지 현실을 알고 나면 정유정을 자폐와 연결하는 그런 기사는 쓰지 않았을 겁니다. 설령 취재 중에 그런 멘트를 받았더라도 애초에 야마를 잡는 과정에서 걸렀겠죠.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님들, 안 그래도 사는 게 만만치 않은 이들에게 범죄자라는 편견까지 더하지 말길 바랍니다. 당신들은 시청률과 조회수 올리자고 별 생각 없이 하는 작업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휘청하게 하는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류승연 작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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