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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
입력 : 2023-07-05 오전 8:56:29
주의: 이 글은 크래프톤의 '칼리스토 프로토콜' 본편과 DLC로 나온 최종 결말을 다룹니다.
 
지난주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진짜 결말이 담긴 DLC(내려받을 수 있는 콘텐츠) '마지막 전송'을 했습니다. 하는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돌아보죠. 2320년. 물류 운송업자 '제이콥 리'는 항법사 친구 맥스 배로우와 함께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있는 블랙 아이언 교도소에 물건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홍보 사진. (사진=크래프톤)
 
그런데 '아우터웨이'라는 테러단체 소속 다니 나카무라에 의해 우주선이 망가져, 제이콥과 맥스가 칼리스토에 불시착합니다. 일어나 보니 맥스는 얼굴의 반을 잃고 사망하죠. 평소 배달하는 물건이 의심스럽다고 했는데, 제이콥에게 "왜 말을 안들어"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교도소 간수장 레온 페리스는 교도소장 던컨 콜의 명령으로 두 사람을 수감합니다. 평범한 배달원이 졸지에 교도소 수감자가 된 겁니다. 제이콥은 게임 내 체력 막대 역할을 하는 '코어'를 목 뒤에 이식 받고 정신을 잃습니다. 코어 이식은 말러 박사라는 인물이 하는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제이콥의 목에 체력 주사를 찔러넣어 간접적으로 '이게 회복 아이템이야'하고 알려주죠.
 
제이콥은 죽은 맥스의 얼굴을 마주한 악몽에서 깹니다. 그런데 교도소는 불바다에 아수라장이 돼 있습니다. 수감자들은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돼 공격성이 증폭된 '바이오파지'가 돼 있습니다. 제이콥은 장기 수감자 '일라이어스 포터'를 만나, 무전을 주고 받으며 조금씩 교도소 밖으로 나갑니다.
 
그 과정이 처음엔 무섭고 불안합니다. 글렌 스코필드와 제작진은 게임 발매 전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공포 게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이 기준을 어떻게 충족하는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일이 됐습니다. 그들은 이날 전세계 게이머 앞에서 불편과 짜증을 공포와 혼동했음을 자인했습니다. 물론 말이 아닌 결과물로요.
 
초반 설명이 불충분하긴 해도, 괴물의 공격을 양쪽으로 피한 뒤 전기 곤봉으로 후려치는 방식은 쾌감이 있습니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PS)5의 듀얼센스로 전해지는 진동이 타격감을 높입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새로운 게 없는 괴물 디자인과 공격 유형이 초반의 공포를 익숙함으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휙휙 깡' 게임이니까요.
 
휙휙 깡 게임. 왼쪽 오른쪽, 왼쪽으로 피하고 전기 곤봉으로 깡깡깡. 왼쪽 오른쪽 깡깡깡. 덩치가 크든 작든 왼 오 휙휙 깡깡깡. 중반이든 후반이든 머리 두 개 달린 재활용 중간 보스도 휙휙 깡. 끝판왕은 휙휙 피하고 총으로 탕탕탕.
 
한 번 죽으면 그 구간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다시 해야 하는 불편과 짜증이 공포를 압도했습니다. 제이콥의 사망 장면을 넘길 수도 없었지요. 지금은 패치로 건너뛰기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그리고 패키지 게임의 정체성인 서사 문제가 중반 이후 심각한 결함으로 다가옵니다. 제이콥은 우주선을 망가뜨려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다니에게 너무나 쉽게 마음을 엽니다.
 
극 후반부에서 제이콥은 자신이 배달하던 상자들 속에 바이오파지 바이러스가 들어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교도소에 앞서 다른 도시에서 대규모 감염과 사망 사태가 일어났는데, 피해자 중 한 명이 다니의 동생이었습니다. 이때 쓰인 바이러스를 운반한 건 제이콥이었습니다. 물론 제이콥은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 몰랐습니다.
 
제이콥은 우주선 사고로 죽은 친구 맥스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 "우린 우리 일을 하면 된다"고 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런데 제이콥은 앞서 교도소 건물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헬멧이 깨져 안타깝게 숨진 일라이어스의 목에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쑤셔 코어를 빼낸 다니에게 격분했습니다. 일라이어스가 숨졌을 때 제이콥이 보인 표정과 행동은 애틋합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홍보 사진. (사진=크래프톤)
 
일련의 사망 사태를 일으킨 바이러스 운반자가 자신이었음을 알게 돼 괴로운 마음이 드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친구가 죽게 하고, 교도소에 갇히게 만들고, 탈출의 유일한 협력자 시신을 훼손한 뒤 혼자 차 타고 유유히 사라졌던 여자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이 일사천리입니다.
 
이 사태의 흑막인 유나이티드 주피터 컴퍼니의 정체를 알고, 괴물이 된 간수장 레온 페리스를 해치운 뒤에 일어난 일도 공감 하기 힘듭니다.
 
하나 남은 탈출정에 다니를 태우고 자신은 자폭하는 교도소 건물에 남기로 한 거죠. 결말을 보는 게이머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둘이 언제 저런 관계가 됐지?
 
제이콥이 다니를 탈출정에 태운 이유는 이 대사로 요약됩니다. "과거를 인정해야 돼." 이건 일라이어스가 자신의 살인죄를 고백하며 제이콥에게 건넨 말입니다. 그리고 제이콥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 바이러스를 배달했다는 죄책감으로 이 대사를 이어받은거죠.
 
이건 '악의 평범성'에 대한 반성도 아닙니다. 그걸 떠올릴 맥락이 없습니다. 제이콥은 그냥 상자 배달을 했습니다. 체제 순응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쿠팡맨이 상자 배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상자에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그게 쿠팡맨이 자기 목숨으로 책임 질 일인가요? 어느 배달원이 고객 상자 속의 속까지 일일이 뜯어보며 배달 가치가 있는지 따집니까?
 
다니를 떠나보낸 제이콥은 자신과 다니의 코어를 무선 연결해, 서로의 기억과 생각을 나눕니다. 자기가 배달한 바이러스 견본을 다니의 옷에 넣어뒀고요.
 
조금씩 무너지는 교도소에서 제이콥은 말러 박사의 무전을 듣습니다. "여기서 탈출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아까 죽였던 레온 간수장이 얼굴을 들이대고 포효합니다.
 
'설마 이게 끝이야?' 했는데, 이번에 출시한 DLC가 진짜 결말이었습니다. 게임 출시 전 시즌 패스가 포함된 디럭스 에디션을 구입한 저는, 어떻게든 제이콥의 서사가 보완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DLC는 내일 이야기하겠습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결말이 반년만에 나온 걸 생각하면 빠른 속도입니다.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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