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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요즘은 독재자들이 더 크게 “자유”를 외친다
입력 : 2023-07-13 오전 6:00:00
지난달에 인도 정부는 16세 이하의 학생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과 주기율표를 삭제했다. 교과서에서는 물질과 에너지의 원리에 대한 서술도 대폭 축소된다. 이런 지식을 배우려면 대학 진학 이후에야 가능해졌다. 과학을 학살한 교육정책을 채택한 6월에 모디 총리는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인도는 미국과 양자 컴퓨팅과 6G 통신과 같은 미래 신흥기술을 함께 개발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과학을 배격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나라의 지도자가 미국에 가서 질 바이든 여사와 과학재단을 방문했다. 모디 총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야당의 네루 대표는 명예훼손으로 기소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모디라는 이름을 가진 수백만 인도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해괴한 이유였다. 최근 스웨덴의 제이뎀 민주주의 연구소는 민주주의 국가 목록에서 인도를 삭제했다.
 
인도에서 입법부 무력화가 진행 중이라면 이스라엘에서는 사법부가 무력화되고 있다. 명문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스라엘에서는 사법부가 입법부에 대해 기본법 준수 여부를 판단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무력화한다는 거다. 의원내각제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입법부를 장악한 후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야당을 탄압하거나 팔레스타인에 강경한 외교정책을 독단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폴란드에서 행정 권력의 독주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집권 당시에 러시아에 유화적이었다는 이유로 전직 총리에게 낙인을 찍은 것까지는 정치적 공방이려니 했다. 그런데 정부는 어떤 사법절차도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의 관계가 의심되는 인사들의 사상을 심사하고 구금을 할 수 있는 정부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최근 재선에 성공한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예 종신 집권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정치학자들은 “선거 독재”라고 한다.
 
삼권 분립의 민주 공화정이 붕괴되고 있는 인도, 이스라엘, 폴란드, 튀르키예는 모두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며 정치적 위신을 한껏 높인 다음 국내에서는 가혹한 행정 권력의 독주체제를 강화한다. 이들 나라 지도자들에게 미국과의 관계는 국내의 독재를 강화하는 명분이자 자산이다. 바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동맹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데는 윤 대통령이 모디 총리나 두마 대통령, 에르도안 대통령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 윤 대통령은 4월의 미국 의회 연설에서 사실상 지난 정부를 지칭하며 “민주화 운동을 가장한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비난하였다. 지난 달에 자유총연맹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아예 “반국가 세력”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간첩이라는 믿는 인사를 공직에 중용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정치보복에 몰입하는 독재자들이 “자유”를 더 크게 외친다. 이들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민주주의 연대를 가장 앞서서 말한다. 역사는 항상 선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해 왔다. 말이 타락하고 과학이 흔들릴 때 파시즘이 스며들었다는 진실은 독재로 회귀하는 나라에서 어김없이 드러난다. 최근 야당이 김건희 여사의 부동산 문제를 거론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책 사업이 백지화되었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과학적 의문 제기도 괴담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독주하는 행정 권력을 더 방치하면 우리의 과학과 이성이 배신당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때 가서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우리는 매우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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