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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오늘도 질문 없나요?
입력 : 2023-07-20 오전 6:00:00
올해 서울 한 대학에서 학부생을 상대로 ‘뉴스 비판과 제작 연습’이란 제목으로 1학기 강의를 했다. 3월 첫 수업 때 학생들 앞에 서서 강사 소개를 하면서 “강의를 하게 되어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필자는 <한겨레> 기자를 하면서 2010년에 이 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학위가 ‘장롱 면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몇 학기 다른 대학에서 강의했다. 그 뒤 신문사 근무를 마쳤고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으로 3년을 일하고, 돌고 돌다가 학위를 준 대학에 돌아와 ‘후배’를 가르치게 됐다. 소감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신문 방송 취재와 보도 원리 등을 다루는 과목이었다. 필자는 학생들한테 되도록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교재 바깥 내용도 준비했다. 예를 들면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오보를 함으로써 세상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세월호 대참사 때 방송 매체들이 속보 경쟁에 치우쳐,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전원 구조”라고 자막부터 띄우고 본 사례, 그런데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국내외 언론 사례를 풍부하게 다루고자 했다.
 
학생들도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필자는 느꼈다. 금요일 오후 3시간 수업에 수강생은 31명이었다. 대부분 졸지 않고 강사와 눈을 맞추었다. 조별 과제를 몇 차례 내주었는데 빠짐없이 결과를 제출했다.
 
문제는 “질문 있나요?”라고 거듭 물어도 질문하는 학생이 거의 없더라는 점이다. 학기 초에는 서먹서먹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학기 말까지 똑같았다. 가물에 콩 나듯 손을 든 학생은 수업 내용이 아니라, “기말고사는 어떤 형태로 출제하나요?”라고 ‘꼭 필요한’ 행정 사항을 물었다.
 
괴로웠다. 과거 다른 곳에서 강의할 때는 수강생이 질문을 많이 해주었는데. 질문이 많아서 일문일답이 아니라 일괄 답변으로 시간을 쪼개 쓰기도 했는데. 필자는 질문이 많이 나오는가를 강의 성공 척도로 삼기도 했다. 그 척도에 따르면 이번 학기 강의는 실패다. 학생이 질문하지 않는 것은 강사가 강의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책임은 나한테 있다. 괴롭지 않겠는가.
 
우연한 계기로 그 대학 교무행정 담당 교수 견해를 듣게 됐다. “코로나19 3년간 줌으로 비대면 강의를 하다가 올해 대면 강의를 재개했다. 학생들이 달라졌다. 첫째, 강의실에서 손으로 노트에 필기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다들 태블릿이나 노트북, 스마트폰에 입력한다.” 그렇겠네 싶었다. “둘째, 질문이 사라졌다. 학생들이 대면 강의실로 돌아와서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었군! <한국일보>는 올해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라는 기획물을 통해 학교 못가서 외로웠던 아이들한테 남은 상처를 다뤘다. 대학생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강의를 잘하지 못했다고 나만 자책할 필요가 없어졌다.
 
필자는 좋은 강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그렇더라도 질문을 열심히 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해야 마땅한데 내 책임이 아닌 점에 안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헤르만 헤세는 “묻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라는 말로 질문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동감한다. 인문학에서 질문은 사물을 깊이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와 분석력을 늘리며 윤리적으로 고찰하고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학생들한테 다시 호소하고 싶다. “여러분. 질문하세요! 질문해야 공부가 깊어집니다.”
 
박창식 언론인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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