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뉴게임+)'데이브 더 다이버',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나리오의 힘
도트 강조 그래픽으로 정감 있는 연출
입력 : 2023-07-26 오후 5:02:5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여기, 배불뚝이 털보 잠수부 데이브가 해변에 누워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따르르릉~' 이윽고 전화가 울리고, 백발 사나이 '코브라'가 초밥을 먹자며 초대하네요. 그 길로 비행기에 오른 데이브는 어느 섬에 도착합니다. 코브라는 데이브를 만나 보트에 태운 후 거대한 블루홀로 향합니다. 블루홀은 구멍 뚫린 모양으로 만들어진 바다 지형을 뜻합니다. 자동차 도로의 싱크홀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코브라는 초밥을 주는 대신, 시시각각 지형과 생태계가 변하는 이 블루홀에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얼떨결에 바다에 뛰어든 데이브는 이내 작살총으로 물고기 사냥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하게 될 수많은 일과 거대한 난관을 예상하지 못한 채.
 
넥슨 산하 민트로켓의 PC 패키지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가 100만장 판매를 돌파하며 흥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이 게임을 2장(Chapter 2) 초반까지 진행했는데요. 깔끔한 배경에 도트(네모난 점) 그래픽이 강조된 캐릭터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볼록한 몸으로 헤엄치며 물고기 사냥하는 데이브의 사투가 귀엽게 연출됩니다.
 
데이브는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있다며 구슬리는 코브라의 제안에 불안해하며 블루홀에 뛰어든다. (사진=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실행 화면)
 
등 떠밀린 주인공, 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픽뿐이 아니죠. 실사 그래픽으로 주목 받았다가 게임성을 놓쳐 실패한 작품도 있고, 이야기에만 치중했다가 흥행 못한 게임도 있습니다. 반면 데이브 더 다이버는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게임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넥슨 관계자가 "수익이 아닌 순수한 재미만을 위해 만든 게임"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게임의 상황 설정이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작살총으로 물고기를 잡은 데이브는 또 얼떨결에 이 동네 초밥집 '반쵸스시' 주인장 반쵸를 도와, 낮에는 고기 잡고 밤에는 음식을 나르게 됩니다. 손님이 오면 녹차를 정량대로 따라야 하고, 인내심 막대가 차기 전에 서둘러 초밥을 갖다줘야 하죠.
 
반쵸는 무뚝뚝한 고집쟁이 요리사로, 데이브가 구해온 재료로 새 요리를 연구합니다. 반쵸가 초밥 맛을 개선하거나 새 요리를 연구할 때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데, 진지한 반쵸의 표정과 대조되는 상황이 배꼽을 잡게 합니다. 반쵸가 갈아낸 칼날에 벚꽃잎이 날아와 두 조각 나는 모습을 수족관 속 물고기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데이브를 부려먹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담긴 애니메이션은 무기 제작이나 식당 평가 등 새로운 기회와 고비마다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은 넉살이 좋은 건지 수완이 뛰어난 건지, 너무나 쉽게 데이브를 심해로 내보냅니다.
 
여성 캐릭터 오타쿠인 '사토상'은 데이브에게 대왕 오징어를 해치우고 '레아스 쨩' 피규어 택배 상자를 가져오라는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요. 고대 어인족(반인 반어) 연구에 몰두하는 '닥터 베이컨'도 데이브의 위험 따윈 개의치 않고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착한 털보 데이브는 거절을 못합니다.
 
생물학 연구하는 대학원생 '엘리'는 무례한 태도로 귀한 생물 채집을 시키는데, 돈 준다고 하니 태도를 바꾸는 데이브의 모습도 시트콤 같은 재미를 선사합니다.
 
바다가 예쁘다고 만만히 봐선 안 됩니다. 덩치 큰 버팔로피쉬와 지중해비늘돔을 노리면 횟감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해오는 물고기가 늘어납니다. 쏠베감펭과 톱상어, 타이탄트리거 피쉬, 대서양아귀, 큰꼬치고기, 백기흉상어의 공격을 피하고 총을 쏴야 하는데, 순발력이 필수입니다.
 
장사해서 번 돈으로 산소통과 아이템 보관함의 용량, 잠수 가능한 수심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색깔의 조개껍질이나 생물을 보면 일단 채집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VIP가 나타나 새로운 요리를 요구할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데이브는 주변 사람 민폐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시나리오는 허술하지 않습니다. 글과 게임이 따로 놀지 않기 때문에, 게이머는 이 모든 상황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다.
 
데이브가 바다 속에서 발견한 무기 ‘일본도’에 대한 소개. 아이템 설명도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임 시나리오의 역할이다. (사진=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실행 화면)
 
줄거리가 곧 게임의 체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게임을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정의합니다. 사전적 의미를 참고하면, 모름지기 게임이란 정해진 규칙으로 주인공 행동에 제약을 주고,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하나 둘 씩 풀어주면서, 그 수준에 맞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재미도 줘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게임이란 매체의 특성상 이런 재미를 주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게임은 참여자가 캐릭터 입장에 직접 서서 가상 세계 속 인물과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재밌는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게임에 적용됐을 때 재미가 보장되지 않는 이유죠. 인물과 사물을 시시각각 마주하며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 세계관을 기반으로 삼아 재화와 도구를 바라보게 하는 장치들이 고안돼야 합니다. 때로는 영화처럼 압축된 상황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고요.
 
하지만 이 같은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회사들이 과거 소설가에게 게임 시나리오를 맡겼다가 쓴 잔을 든 사례가 많다는 게 업계 전언입니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시나리오는 게임의 체계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기능합니다. 앞서 데이브가 얼떨결에 일을 떠맡는다고 설명했지요. 그런데 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데이브에게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고, 임무 완료 대가로 유용한 기능을 풀어주며 동기부여 합니다.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의 레벨 올리기용 통과의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죠.
 
일례로 데이브가 새로운 주변 인물과 만나며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스마트폰에는 새로운 앱이 설치됩니다. 그 중 하나가 '쿡스타그램'입니다. 손님이 하나둘씩 들어오자, 반쵸스시는 홍보를 위해 쿡스타 계정을 만드는데요. 이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이 후기를 남기면서 쿡스타 등급이 올라가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저 역시 게임 속 스마트폰으로 게시물에 하트를 누를 수 있습니다.
 
나중엔 까탈스런 VIP 손님들이 반쵸를 도발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약속한 날짜까지 귀한 재료를 구하면 반쵸의 스시 맛에 감동하는 VIP의 표정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1장이 끝날 때 쯤 반쵸스시 식구들이 하루 동안 손님을 받지 않고 회식을 한다. 이 때의 추억을 사진에 담아 쿡스타그램에 실은 모습. (사진=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실행 화면)
 
바다 곳곳에 폭탄을 쏴 대는 유사 환경단체의 공격으로 새로운 탐험지역이 뚫리기도 하고요. 추억의 곰치 카레를 먹고 싶어하는 손님 '오토'의 요구로 밤 시간 잠수 기능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때 식당 영업시간 3분의1을 쓰게 되지만, 낮에는 바위에 숨어있던 곰치와 다른 어종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곰치 카레에 감동한 오토는 데이브에게 '양식장' 기능을 풀어주며 사냥에 대한 부담을 덜어줍니다. 여기까지가 2장 초반 내용입니다. 이 게임 분량은 총 7장입니다.
 
게임사들은 데이브 더 다이버의 성공을 보며,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나리오'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과 진행이 따로 놀지 않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면서도 이상적"이라며 "이런 작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PC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 97%를 받은 이 게임은 닌텐도 스위치판 발매도 예정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평소 채집형 게임에 관심 없다는 한 게이머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게임으로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데이브 더 다이버는 말끔한 도트 그래픽과 이야기에 대한 관심 때문에 스위치로 나오면 해 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범종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