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유치원 교사들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 심각한 '교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교권 보호 정책' 대상이 초·중·고교 교사로만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유아교육법'과 시행령 개정으로 유치원 교사도 유아에 대한 '정당한 생활지도'를 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심각한 '교권 침해' 겪지만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는 유치원 교사들
7일 유아교육계에 따르면 유치원 교사들 역시 초·중·고교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유형의 '교권 침해'를 겪고 있습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이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유치원 현장의 교육 활동 침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욕설·폭행 등 '학부모에 의한 교육 활동 침해'가 6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유아에 의한 교육 활동 침해' 19%,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7%, '관리자에 의한 교권 침해 사안 축소 및 은폐' 7% 등의 순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학부모가 유치원 교사에게 "나는 너 따위가 무시할 사람이 아니다", "애도 없으면서 뭘 안다고 교사를 하느냐", "저능아냐", "선생 자격이 없다", "애 아빠가 선생님 밤길 조심하라고 한다" 등 모욕이나 협박성 발언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매일 특정 시간에 전화로 수업 내용을 보고하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교사의 뺨을 때리고 무릎을 꿇게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 A씨는 "학부모가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 주말 등 업무 외 시간에 전화해 폭언·욕설을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아이가 특정 친구와 놀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는 등 비교육적인 요구를 하는 일도 있다"며 "이런 일을 문제 삼으면 이후에 보복성 조치를 당할까 봐 억울하고 화가 나도 참고 넘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유치원 교사도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원으로서 '교육 활동 침해'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는 초·중·고교 교사들에 비해 교원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교권 침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내놓은 정부의 대책도 초·중·고교 교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했으나 초·중·고교 교원만이 그 대상입니다. 또 '교사 생활지도 권한'의 구체적인 지도 범위와 방식 등을 담은 고시를 제정해 오는 2학기 중 시행하고, 8월 중 '교권 보호 종합 대책'도 발표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초·중·고교 교원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교권 보호를 위한 법안들도 유치원 교사는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유치원 교사들도 심각한 '교권 침해'를 겪고 있으나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유치원 간판.(사진 = 뉴시스)
"'유아교육법' 개정해 '정당한 생활지도' 권한 명시해야 악성 민원 대응 가능"
교사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도 유치원 교사들에게는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교원지위법' 제19조 2항에 따르면 '유치원을 제외한 고등학교 이하 각 학교에 교보위를 두며, 유치원에는 유치원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교보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유치원만 교보위 설치가 의무 사항이 아닌 것입니다.
정부는 유치원 교사의 경우 이달 발표할 '교권 보호 종합 대책'에 관련 매뉴얼을 넣고자 검토하고 있으나 유치원 교사들은 매뉴얼이 아닌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매뉴얼은 권고사항이라 강제성이 없는 만큼 '유아교육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유치원 교사도 '정당한 생활지도'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시해야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도 대응할 근거가 생긴다는 겁니다. 현재의 '유아교육법'에는 교사의 유아 지도에 대한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유아가 친구를 때리는 행동을 했을 때 이를 말리고 훈육하는 등 '정당한 생활지도'를 한 경우에도 학부모들이 항의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생활지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줘야 정당한 지도를 했음에도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등의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유치원도 교보위를 필수로 설치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을 개정하고, 교육부가 이달 발표할 '교권 보호 종합 대책'도 초·중·고교 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그 대상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치원 교사들도 심각한 '교권 침해'를 겪고 있으나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유치원 수업 모습.(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