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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실험과 계산의 재현가능성
입력 : 2023-08-22 오전 6:00:00
최근 한국의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논문의 주장이 폭넓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이 결과를 재현하여 검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재현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초기의 화제성은 서서히 흐려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 사건은 과학에서 재현가능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과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수학은 오랜 시간 동안 엄밀한 논리와 증명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전통적인 증명은 누구나 논증 과정을 명확히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학적 논증의 과정에 컴퓨터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은 수학에도 재현성의 문제를 점점 부각시키고 있다.
 
"나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산했더니 맞더라"는 주장은 수학의 확인가능성과 같은 핵심 원칙을 해친다. 따라서 컴퓨터를 이용한 수학적 논증에서는 계산 과정을 명확히 기록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계산을 위한 동일한 환경을 갖출 수 있고, 같은 계산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논증은 신뢰받을 수 있다. 혼자만의 비법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결과가 과학의 대상이 아니듯, 이는 과학 연구의 재현성 문제와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자연과학에서 재현가능한 실험의 중요성처럼, 수학에서도 재현가능한 계산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게 된다.
 
현대 수학 연구자들은 다양한 도구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사용된 도구와 소프트웨어의 세부 정보나 설정, 버전을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산의 완벽한 재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재현가능한 계산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면,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을 생각해 보면 좋다. 1994년에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이 보신각 종 모양의 타임캡슐에는 1990년대의 서울을 대표하는 600개의 다양한 아이템이 담겨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인 ‘아래한글2.5‘도 포함되어 있다. 이 타임캡슐은 2394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만약 미래에 타임캡슐이 열린다면, 안에 담긴 아래한글2.5 프로그램은 다시 실행될 수 있을까? 이는 많은 도전을 야기할 수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하드웨어와 운영 체제 환경은 이미 큰 변화를 겪었는데, 미래에는 그 차이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데이터 저장 매체 역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보관된 디스켓이나 CD의 품질 변화, 그리고 이런 매체를 읽는 장치의 부재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재현하고, 필요한 다른 관련 소프트웨어나 라이브러리도 마련해야 한다.
 
오래전에 아래한글2.5로 작성해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한 문서를 다시 열어보는 일은 지금도 이미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작성된 계산에 의존하는 수학적 논증을 누구나 필요할 때 실행하여 검증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재현가능한 계산의 핵심적인 이슈를 반영한다.
 
수학의 투명한 논증의 전통과 재현가능한 계산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논증의 전통적 기준을 낮출 수는 없다. 컴퓨터의 활용이 늘어남에 따라, 재현가능한 계산의 원칙은 수학의 신뢰성과 진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실험의 재현가능성이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운 문제일 수 있다면, 계산의 재현가능성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주제일 것이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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