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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 근로환경에 악영향…합리적이지 않은 제도"
경총·중기중앙회 "포괄임금제 폐지, 기업 효율성 저해"
입력 : 2023-08-22 오후 5:35:51
 
 
[뉴스토마토 김유진 기자] # 종교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A씨는 '종교적 봉사'라는 명목으로 장기간 만성 야근에 시달렸습니다. 사무직인데다 사원증으로 출퇴근을 관리해 근무시간 산정이 쉽지만, A씨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임금을 지급받았습니다. A씨는 "수당은 전혀 주지 않으면서 평일 초과근무는 휴가 보상조차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 주 40시간 근무라는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한 B씨는 야근수당, 휴일수당이 전무한 것을 입사 후 알게 됐습니다. B씨는 포괄임금제 때문에 한 달 초과근무 시간만 97시간으로 일 중독처럼 근무한 시간을 따져보니 총 240시간에 달했습니다. 
 
공짜야근 유발로 지적을 받고 있는 포괄임금제 논란이 재점화되는 등 노동자 권리 보호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지만 포괄임금제를 축소해야한다는 견해가 상당합니다.
 
22일 정치권과 세종관가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올해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포괄임금제'가 오는 10월 예정된 국정감사에서 화두에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포괄임금제란 사용자와 근로자가 임금을 산정할 때 일정 항목의 임금을 따로 정하지 않고 일괄 지급하기로 한 약정을 말합니다. 고용부가 2020년 10월 진행한 실태조사를 보면 10인 이상 사업장 2522곳 중 951곳(37.7%)이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17일 '포괄임금계약의 유용성과 제한의 문제' 토론회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포괄임금·고정OT계약 금지 법안은 시대 역행적이며 기업 경쟁력 악화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산업현장에서는 시간의 길이보다는 창의성이 생산성을 높이는 업무가 증가하고 있는데, 보상의 기준을 단순히 근로시간의 양에 맞추는 방식을 강제하면 근로자의 창의성을 훼손하고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올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주요 화두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사진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기중앙회가 개최한 포괄임금제 토론회.(사진=뉴시스)
 
하지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가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 시킨다고 지적합니다.
 
김혜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포괄임금제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업들이 잔업·특근을 마음대로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왜곡해서 인식하는 것"이라며 "포괄임금을 약정해야 될만큼 노동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업장이 아닌데도 포괄임금 약정을 했다는 이유로 연장근무를 시키고 정당한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포괄임금제도 자체를 인정한 것이 문제"라며 "노동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특정할 수 있다. 이것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포괄임금제도를 만들어 그것을 용인해주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이를 악용해 연장근로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자료를 보면 포괄임금제는 상시적인 연장근로를 합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보고서는 포괄임금제 약정을 통해 '공짜 야근'을 시키면서도 실근로시간에 대응하는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근로기준법'상 사각지대를 키우고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전문가들도 포괄임금제가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합리적이지 않은 제도라고 지적합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근로시간을 특정할 수 없어서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포괄임금제를 하려고 근로시간을 책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제도 자체의 선악 문제가 아니라 운영을 취지에 맞게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어 "이번 노동개혁과 관련해 임금과 근로시간은 가장 중요한 축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근로시간을 이야기한다면 포괄임금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제도를 악용해 노사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착취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수의 회사들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을 더 많이 할 가능성이 크다"며 "포괄임금제를 할 경우 사측에서 노동자에게 '돈도 받는데 왜 연장근로를 하지 않느냐'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에 악용될 수가 있다"며 "이 제도가 합리적인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올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주요 화두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사진은 포괄임금제 폐지를 요구하는 건설노조 시위 모습.(사진=뉴시스)
 
세종=김유진 기자 yu@etomato.com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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