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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함의 뒷모습
입력 : 2023-08-25 오후 5:50:21
한 금융권 관계자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주로 금융감독원 기자실에 있는데요. 식사 장소로 여의도 인근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알겠다고는 하는데 좀 떨떠름해 하더라고요.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 싶어 물어보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금감원 옆이라 뭔가 소화가 잘 안될 것 같아서요. 뭐 괜찮습니다."
 
멀리 나가기 싫어 제 편의대로 금감원 바로 옆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문득 궁금해 물었습니다. "금감원이 현장 검사를 나가면 막 고압적으로 대하나요? 빨리 자료를 안 내놓으면 협박을 한다든가, 영화에서 검사들이 범죄자 수사하듯 막 숨막히게 그러나 보죠?"라고 묻자 "아니오 오히려 너무 친절해서 무서운 거죠. 그 친절함 뒤에 뭔가 따라올 것 같거든요." 한마디로 고아원 가기 전 먹는 짜장면 같다는 겁니다.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은 재벌 3세 조태오 역할을 맡았습니다. 조태오는 재벌들의 폭행, 마약, 음주운전 등 기행들을 비롯해 야구방망이 구타 사건까지 차용해 만들어진 인물인데요. 한마디로 개망나니입니다.  
 
조태오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하청업체 전 직원 두 명을 싸우게 만드는 건데요. 두 사람이 싸우게 하는 것도 모자라 둘 중 한명의 자식이 그 장면을 보게 합니다. 조태오는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돼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아들이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얼굴을 잡은 채로 웃어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망나니의 행동 중 눈에 띄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조태오가 그룹 내 한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데 링거를 손목에 건 환자가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자 같이 타자고 하며 다정하게 문을 잡아주는 모습인데요. 악인이 베푸는 친절함에 왠지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자신이 할 악행을 대비해 죄책감을 씻고자 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저는 언제부턴가 누군가 저에게 너무 친절하면 그 뒷모습이 어떨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사진=픽사베이)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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