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근래 기업이 자사주를 샀다 하면 십중팔구는 의결권 부활입니다. 우호주주에게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단체교섭에 따라 직원에 교부하는 사례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들 자사주는 처음 취득할 당시엔 주주가치 제고 목적을 내세웠지만 의결권 부활로 변질됨으로써 주주평등원칙을 침해하는 문제를 낳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들이 무수히 발의됐지만 국회에선 논의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6일 각사에 따르면 최근 GS리테일이 대한항공에 300억여원어치 자사주를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회사는 전략적 협업 강화 목적이라고 공시했지만 이를 통해 의결권 부활이 이뤄집니다. 소위 ‘자사주 마법’으로 불리는 이 문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를 KCC에 매각한 사례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형성한 오래된 논란거리입니다. 한국ESG기준원은 GS리테일의 납품업체 판촉비용 전가로 인한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GS건설의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각각 ESG 등급을 내렸지만 GS그룹으로 볼 때 부정적 요소가 이어집니다.
지난달 말부터 코스피 상장사 공시를 보면, 신원이 6억여원어치 자사주를 임직원 상여로 지급해 역시 의결권 부활이 이뤄졌습니다. 풍산홀딩스와 세방은 자사주를 신규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취득 후 즉각 소각하는 이익소각방식이 아니라서 의결권 부활 가능성이 상존하게 됩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자사주로 직원 상여를 지급해 의결권이 부활됐습니다. 자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은 100억원어치 자사주를 사기로 했는데 아예 임직원 성과보상지급 및 장기근속을 도모하는 목적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 외 롯데케미칼이 처분계획을 잡지 않은 자사주를 취득하기로 했습니다.
기아와 현대모비스, 현대차 등은 각각 911억여원어치, 442억여원어치, 1753억여원어치나 되는 자사주를 직원 계좌로 교부합니다. 단체교섭에 따라 회사주식을 지급하는 내용입니다. 이또한 자사주 의결권 부활이 대거 이뤄지게 됩니다. 기존 주주로서는 이들 신규 주주에게 배당이 분산될 불이익도 감수해야 합니다.
자사주 취득 후 소각하는 이익소각은 SK가 유일했습니다. SK는 1200억원어치 자사주를 취득하기로 위탁기관과 계약했는데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이며 계약 기간 종료 후 전량 이익소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래 주가안정 목적에서 자사주를 사는 이유는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이익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소각까지 해야 취지에 부합합니다. 다만 SK도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28억여원어치 자사주를 임직원 상여로 지급했습니다.
의결권 부활 사례는 당초 자사주를 배당가능이익으로 사는데 즉, 주주공통이익으로 자사주를 사서 특정인에게 교부하거나 우호적인 회사에 처분(우호지분화)함으로써 주주평등원칙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주주는 의결권이 희석됨은 물론 배당이익도 신규 주주와 나눠야 해 기회비용이 생깁니다. 임직원 상여 지급 사례는 또한 임원보수한도를 주주총회에서 정해 보수체계 적정성을 평가받아야 함에도 이를 우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장 전문가는 "자사주 규제 법안은 지금껏 많이 발의돼 왔지만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요즘 떠들썩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까지 포함해 편법 사용 논란이 갈수록 번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