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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 잃은 단풍
입력 : 2023-11-07 오전 11:44:24
매번 찰나처럼 지나가서 아쉬운 계절, 가을입니다. 올해는 달랐습니다. 가을이 길어진 것인지 늦여름이 길어진 것인지 정확히 구분 짓긴 어려우나 시기상으론 가을이 길었습니다. 기온이 크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29일 관악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사진=변소인 기자)
 
트렌치코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가을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20도를 웃도는 낮 기온으로 11월에도 반팔을 입는 사람들이 흔했습니다. 가을 느낌을 내려고 애를 쓴 이들은 낮이면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11월에도 대중교통, 카페, 식당가에서는 에어컨을 가동했습니다. 
 
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10월 말이 되면 꼼짝없이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축제를 위해 예쁜 의상을 입었던 이들이 강추위에 덜덜 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 역시 멋진 가을 옷을 오래입지 못한 채 10월에 뚱뚱한 패딩으로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상기온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올 가을 저는 출장이 많았는데요. 부산, 강원 횡성, 충남 당진, 경남 진주 등을 종횡무진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창밖을 통해 명산들을 올려다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10월부터 단풍을 기대하며 창밖을 봤으나 번번이 기대를 채우기 어려웠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보다. 시간이 지나면 예뻐지겠지'하고 기다렸다가 지난주에도 창밖을 봤으나 똑같았습니다. 홀로 서울 관악산도 올라봤지만 단풍의 색온도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단풍이 가장 유명한 내장산을 검색해봤습니다. 단풍 애호가들이 쓴 내장산 등산 후기에는 실망감이 가득 묻어있었습니다. 예보에 따르면 11월6일이 단풍이 절정인 시기이지만 절정 단풍은 예년의 비절정 시기 단풍보다도 못했습니다. 
 
나무는 기온이 낮아져야 추위에 적응하고자 광합성 기능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이때 알록달록함을 만들어내는 보조색소 등이 나오는데 올 가을은 이런 과정을 제대로 밟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상 고온으로 나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셈입니다. 뜻밖의 온도로 봄꽃이 착각하고 고개를 내민 일도 있었습니다. 진달래와 벚꽃이 때아닌 늦여름과 가을에 얼굴을 내민 건데요.
 
앞으로 기후가 일정한 패턴을 갖지 못하고 널을 뛴다면 이런 현상은 올해로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 계절 즐기던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내려면 우리의 노력도 꼭 필요해 보입니다. 울긋불긋한 단풍도 더 이상 공짜가 아닙니다.
 
변소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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