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최근 인플레이션 확대,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당부 등 식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라면 3사는 예외인 모습입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업체들 간 해외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올해 3분기 라면 업계는 호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인데요.
라면 업계가 올 여름 정부의 방침에 동참해 가격 인하에 나섰다지만, 사실상 주력 제품을 뺀 구색 갖추기 형태의 가격 조정에 나선 점도 실적 개선에 한몫했다는 분석입니다.
7일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농심의 영업이익은 494억원으로 전년 대비 79.5%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아울러 오뚜기는 697억원으로 57.5%, 삼양식품은 326억원으로 68.8% 각각 신장하는 것으로 관측됐는데요.
이처럼 라면 업계가 호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했고, 글로벌 사업이 호조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10월 '세계식량 가격지수'에 따르면 곡물 가격지수는 125포인트로 전월(126.3포인트)보다 하락했습니다. 미국 내 밀 수확량이 증가하며 국제 밀 가격이 하락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또 지난달 유지류 가격지수는 120포인트로 전월(120.9포인트)보다 역시 낮아졌는데요. 특히 라면의 주 원료인 팜유의 경우 주요 생산국에서 공급이 증가하는 반면, 국제적 수입 수요가 저조해 전월 대비 지수가 떨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울러 업계는 'K-푸드' 열풍을 등에 업고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 견조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실정인데요.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라면 수출액은 2억5118만 달러(약 3383억원)로 분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라면 업계의 실적 성장세를 두고 의외라는 평도 나옵니다. 앞서 지난 6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라면 업계를 직접 언급하며 가격 인하의 뜻을 내비쳤고, 직후 업체들이 줄줄이 라면 가격 인하에 나섰던 까닭입니다.
업계가 정부의 요구에 응하고 가격까지 낮췄음에도, 직후 실적 개선이 이뤄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한 꺼풀 벗겨보면 이 같은 인하에는 착시 마케팅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은 지난해 9~11월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라면 가격을 평균 9~11% 인상한 바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업체들은 올 여름 가격 인하율을 4~5%로 잡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인상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업계의 품목별 인하율 적용 흐름을 살펴봐도 고심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농심은 오직 신라면 제품 하나만 4.5% 인하했습니다. 반대로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각각 주력 제품인 진라면과 붉닭볶음면을 제외한 다른 라인업들의 가격 인하에만 나섰는데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꼼수 마케팅으로 보일만한 상황입니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라면이 주식 대용의 위상을 갖고 있는 만큼, 라면 업계는 좀처럼 업황을 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업체들이 사실상 자사 수익성을 보전하는 방향의 할인에 나섰기 때문에 이를 소비자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며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구색 갖추기 정도 차원의 할인에 나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기 제품들을 중심으로 할인에 나섰다면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됐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한 대형마트의 라면 제품 진열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