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정부가 출범 이후 총 21차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주요 대책들이 구체적인 컨티전시 플랜(비상계획) 없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면서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뒤로 갈수록 회의에서 주로 논의된 안건이 당면한 '비상 경제' 상황과 적잖이 동떨어진 의제들이었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용 회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8일 취임 이후 첫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소비자물가가 24년 만의 최고인 6% 오른 데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저소득층의 생계지원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인상하고 식료품비와 생필품비 지원을 확대하며 취약계층 복지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취약계층 지원 재원은 8000억원에 그쳤습니다. 당시 중앙정부 지출 규모가 39조원이던 2차 추경액에 비하면 극히 적은 액수였습니다. '비상회의'란 이름에 비해 실제 재정 지원이 크게 부족했던 셈입니다.
긴 호흡 없는 '단기대책'…'컨트롤타워' 역할 못하는 대통령실
같은 달 14일 2차 회의에선 소상공인·서민·청년층 등 취약계층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융 지원을 통해 빚 부담을 경감해주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전날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자, 가파른 이자 부담 증가로 금융 취약층에 큰 타격이 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한 겁니다. 다만 정부가 코로나19 봉쇄 조처로 빚이 누적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책 중 상당 부분을 은행에 떠맡긴 점이 한계로 지적됐습니다.
6일 뒤 3차 회의를 열어 '주거분야 민생안정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금리 상승으로 취약층 주거비 부담이 커지자 임대차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추가 대책을 내놓은 겁니다. 버팀목 전세대출의 금리가 동결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료 동결이 1년 연장되는 것이 핵심인데 서민들이 실제로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주거부담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거급여'라는 게 있는데 주거급여 임대료를 거의 안 올렸다"고 지적했습니다.
4차 회의부터는 비상회의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경제 정책 발표가 주를 이뤘습니다. 정부는 4차 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5000억원 규모의 민관 합동 'K-바이오·백신펀드'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6차 땐 '새 정부 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 방향' 발표, 7차 땐 '수출경쟁력 강화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9차 회의에선 '청년 농업 창업 지원을 위한 대책', 10차 회의에선 외환시장 수급 환경 개선 등 '국제수지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10월27일 열린 11차 회의는 첫 생중계로 진행됐습니다. 신성장·수출동력 확보 방안 논의에 나섰지만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놓고 부처 간 해법이 부딪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도 격려와 당부가 많았습니다. 12차 회의에선 규제를 풀고 세금을 깎아 기업과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의 활력을 높이는 방향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윤 대통령은 '노조 부패'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투명한 노조 회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보선 패배 후 첫 비경회의…'정치쇼' 논란 휩싸인 타운홀미팅
해가 바뀌어 2023년 2월15일에 열린 13차 회의에선 물가·민생경제 상황·분야별 대응 방향이 논의됐고, 14차 회의에선 수도권에 300조원 규모의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는 계획이 나왔습니다. 15차 회의에선 내수 활성화 대책이 논의됐고, 16차 회의에선 이차전지에 대한 정부와 관련 기업의 투자 계획이 나왔습니다. 18차 회의에선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논의됐는데 윤 대통령은 이때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 이득 걷어낼 것 강조했습니다.
여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첫 회의인 21차 때(11월1일)는 타운홀 미팅 형식의 회의로 진행됐는데 카카오택시의 독과점 문제에 관해 질문한 패널이 대선 당시 국민의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핵심 당원이란 사실이 드러나 '정치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민생과 관련해 시민과 소통하겠다면서 '핵심 당원'을 참석시킨 게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단기 대책만 있고, 장기 정책이 없다"며 "시시때때로 나오는 것을 대책 위주로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컨트롤타워"라며 "장기적인 비전과 긴 호흡의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나오지 못하는 점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