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전격 금지 이후 대다수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론 증시에 유리하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외국인 이탈에 따른 부정적 재료로 반응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단기적 유리는 하루에 그쳤고, 오히려 외국인 매물 확대와 글로벌 매크로 변화에 따른 영향력이 더욱 컸습니다. 공매도 그 자체의 금지로 인한 증시 부양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현재까지는) 해석되는데요. 공매도가 집중됐던 2차전지 시가총액 상위주에 대한 숏커버링(환매수) 유입은 6일 하루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고요. 오히려 국내외 증권사에선
에코프로(086520)를 비롯한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2차전지주에 대한 매도 의견을 내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해당 기업의 고평가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데요. 그럼에도 이번 매도 보고서에 대해선 뒷말이 무성합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기업 분석 방법은 PER(주가수익비율)입니다. 흔히 '퍼가 몇배지' 하며 증권방송이나 뉴스에서 말하는 '퍼'가 PER입니다. PER 배수에 따라 고평가와 저평가를 가늠하는데요. 동종업계에서 추산된 PER보다 높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가 되는 식입니다. PER은 당기순이익을 회사의 주식수로 나눈 값인 EPS(주당순이익)에 회사의 현재 주가를 나눈 값인데요. 예컨대 회사 주가가 1만원이고, EPS가 1000원이면 PER은 10배가 됩니다. 고평가 논란이 일고 있는 에코프로의 PER은 올해 이익 예상치를 기준으로 512배인데요. 에코프로비엠도 100배입니다. POSCO홀딩스가 13배 정도인것을 감안하면 에코프로그룹이 고평가됐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있는데요. 기업의 가치는 가까운 미래, 올해 예상되는 수익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먼 미래의 수익을 기준으로도 산정이 가능하단 점입니다. 쉬운 예로 IPO(기업공개)를 준비하는 기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23~2025년까지, 더 멀리는 2030년의 예상 실적을 가져와서 PER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먼 미래의 숫자가 현실화되는 것을 가정하고 그 이익을 토대로 현재 회사 주가 수준을 설명하는 것이죠. 사실상 에코프로 등 2차전지 관련주 급등의 이유로 보면 됩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고평가를 지적하는 측은 현실화하지 않은 실적이 지나치게 빠르게 현재 주가에 과도하게 투영됐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증권사에서 발간하는 모든 종목의 실적 추정과 밸류에이션이 가까운 미래만을 두고 설정돼 있을까요. 특정하진 않겠지만 현재 발간된 여러 증권사의 보고서를 보면 어떤 종목에 대해선 가까운 미래를 사용하고, 어떤 종목에 대해선 먼 미래를 사용하는 행태가 나타납니다. 해당 기업이 속한 산업군마다 특색은 다를 수 있지만, 기업 실적을 추정하는 기준과 잣대를 현재 주가에 맞춰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다 쓰는 셈입니다.
익명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어떤 종목의 실적은 가까운 미래를, 어떤 종목의 실적은 먼 미래를 가져다 쓰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고유 권한이지만 그것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말했는데요. 기준이 없는데 매도 보고서에 '소신'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소신이 되려면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매수 일색의 리서치에 대한 변화 요구가 봇물을 이루는 만큼 매도 보고서의 소신을 지키기 위한 기준과 잣대가 명확해지길 바라봅니다.
최성남 증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