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우리나라 기술로 독자 설계·건조된 해군의 첫 번째 3000톤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의 모습이다. (해군 제공, 뉴시스 사진)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13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 성장과 함께, 짧은 기간에 몸집을 키우고 질적으로 도약한 성공 스토리를 우리는 산업 별로 적지 않게 갖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계 43번째 후발 주자로 잠수함을 도입하고 단기간에 수출국가로 깜짝 성장한 한국 잠수함 산업을 소개합니다.
한국 해군은 1987년 독일 하데베(HDW) 조선소와 209급(1200톤) 잠수함 3척을 도입하기로 계약합니다. 그중 첫 번째 함정을 독일에서 만들어 1992년에 인수했고 2척은 독일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합니다. 세계에서 43번째 잠수함 보유 국가가 됐는데 많이 늦었죠. 당시 미국 등 주변국이 한국 잠수함 도입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매사를 비밀리에 추진해야 했죠. 서울역 앞 대우그룹 빌딩 16층에 사무실을 둔 해군 잠수함 도입 팀 장교들은 쉬쉬하며 사복으로 드나들었습니다.
한국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 후보 54명을 선발해 하데베 조선소로 파견합니다. 한국 조선업체도 기술자 150명을 보냅니다. 잠수함을 운영하거나 수리하고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고였죠. 당시 하데베 조선소에는 한국을 비롯해 다섯 나라 해군이 같은 목적으로 머물렀습니다. 한국 해군은 '잠이 없는 해군, 사무실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해군'으로 소문났습니다. 뭐 하나 배울 때마다 밤낮없이 번역해 정리하고 한국에 보내느라 그랬죠.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특수의장2팀 기술자 정한구씨는 "유럽 기술자들이 기술을 잘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 저녁 7시가 아니라 9시 반이 넘도록 (기술을) 익혀야 했다"고 회고했습니다(KBS 인터뷰).
우리 업계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두 곳이 잠수함을 만들죠. 1992년에는 1200톤급(장보고급) 2번함으로 이천함을 국내에서 조립합니다. 이어 1800톤급(손원일급) 잠수함을 역시 독일 기술 지원으로 만들어나갑니다. 2011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이 인도네시아로부터 1400톤급 잠수함 3척 수출 계약을 1조3000억원에 따내는데요. 이로써 한국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 잠수함 수출국이 됐죠. 우리는 독일 기업한테서 잠수함 건조 기술을 배웠는데요. 불과 20년만에 그 기업을 인도네시아 입찰에서 물리쳤습니다. 유럽 업계가 충격받았죠. 유럽연합 경제팀에서 독일과 프랑스 조선회사들로 컨소시움을 만들어 한국에 공동 대응하는 방법을 은밀히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 한국은 3000톤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안창호함은 1200톤, 1800톤급과 달리 국내 기술로 독자 설계한 중형 잠수함입니다. 연근해 활동을 넘어서, 먼바다로 나아가 비교적 장기 작전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에 이어 3000톤급 이상 잠수함을 독자 개발한 8번째 나라가 됐습니다.
지난 2016년 3월24일 대우조선해양은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3척의 1400톤급 잠수함 중 초도함의 진수식을 열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뉴시스 사진)
해외에서는 해마다 10척 가량 잠수함 도입 시장이 열립니다. 마침 캐나다(8~12척)와 폴란드(3~4척), 필리핀(2척)이 조만간 잠수함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함정 도입 가격에 장기 유지 보수 비용을 합치면 줄잡아 70조원에 이르는 큰 판이 열립니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페인 업체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젤 잠수함 시장의 최대 강자는 여전히 독일입니다. 18개 나라에 170여척을 판매한 실적이 있습니다. 다음 순위로는 프랑스가 30여척 팔았죠.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3척 판매했고, 일본은 과거 무기 수출을 못하다가 처음 수출에 뛰어들었기에 판매 실적은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캐나다 수요와 관련해 한국 도산 안창호함급과 일본 타이게이급이 유력한 후보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2500~3000톤급으로 장기 작전이 가능한 함정을 원한다는 캐나다 요구를 두 나라가 맞출 수 있다는 거죠. 수출 실적은 둘 다 적지만 말입니다.
특히 한국은 안창호함 국산화율이 75%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조선 능력이 최대 강점입니다. 조선 수주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선 강국의 역량을, 군용 선박에서도 발휘하는 거죠. 납기를 맞추거나 후속 유지 보수 지원을 잘할 수 있겠죠. 해군 장병들이 림팩 훈련에 가서 뛰어난 성적을 낸 것을 비롯해 잠수함 운용 능력을 인정받는 점도 장점입니다. 잠수함 제작뿐 아니라 운용 노하우도 한국이 잘 알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 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이 잠수함사령관을 지낸 정승균 예비역 중장을 해외사업단장(부사장)으로 발 빠르게 영입했습니다. 한화오션은 올해 하반기에 캐나다와 필리핀을 찾아 우리 잠수함의 장점을 홍보했죠. 현대중공업은 업체 콘소시엄으로 '팀 코리아'를 꾸려 캐나다 수주전에 공동 대처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잠수함 산업은 후발 주자로 시작해 짧은 기간에 수출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캐나다 폴란드 등 큰 시장 수요와 관련해서도 경쟁 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조선 강국이며 기술력과 해군 승조원 역량이 우수하다는 이미지를 살려, 업계와 정부가 수출 전략을 잘 세우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