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탄핵안 처리를 앞둔 1일 급작스레 사의를 표명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일단 멈춰 섰습니다. 이 위원장은 탄핵안 가결 시 수개월간 직무정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업무 공백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가짜뉴스 척결’·’공영방송 개혁’ 등 현 정권의 방송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사퇴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해 면직안을 재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위원장직을 사임하는 것은 거야의 압력에 떠밀려서도, 정치적인 꼼수도 아니고 오직 국가와 대통령을 위한 충정에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저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이뤄질 경우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개월이 걸릴 지 알 수가 없다”라며 “그동안 방통위가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되고 탄핵을 둘러싼 여야 공방 과정에서 국회가 전면 마비되는 상황은 제가 희생하더라도 피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설명했는데요. 아울러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글로벌 미디어 강국 도약과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언론 정상화의 기차는 계속 달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했는데요. 이 위원장은 지난 8월28일 취임 후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방통위를 떠나게 됐습니다.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로 방통위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5인 체제’ 합의제 기구 형식을 띄던 방통위는 현재 대통령 추천 몫인 이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의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요. 이 위원장의 사퇴로 ‘1인 체제’로 바뀌어 의결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간 방통위는 국회 추천 몫 3인의 상임위원 임명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2인 체제’로 중요 안건을 연속으로 처리해 논란을 빚어 왔습니다. 특히 이 위원장은 ‘가짜뉴스 척결’과 ‘공영방송 개혁’ 등을 기치로 포털·방송 정책 개편에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는데요.
이 위원장은 취임 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KBS 이사진 교체 작업을 주도하고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보궐 이사를 임명했습니다. 또한 KBS, MBC, JTBC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 실태를 점검하고 위반 시 시정 명령 조치 등 엄포도 놓았습니다.
최근에는 ‘뉴스타파 인용보도’ 방송사에 시정 명령 처분을 내리고 ‘YTN 사영화’ 심사에 속도를 내는 등 방송계 안팎 주요 정책 처리의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기형적 ‘2인 체제’의 방통위가 정권 입맛에 맞게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고 강력히 주장하며 탄핵안을 발의하는 등 드라이브를 걸었는데요.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탄핵 추진이 ‘정쟁용 카드에 불과하다’라며 대립을 이어왔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뉴시스)
‘시계 제로’ 방통위, 정상화까지 ‘난항’ 예상
방통위가 ‘1인 체제’로 사실상 멈춰서면서 산적한 현안들은 모두 ‘시계 제로’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에 의결 보류로 결론 낸 YTN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건은 처리가 연기될 전망입니다. 연말에는 지상파 3사(KBS·MBC·SBS) UHD와 지역 민방 등에 대한 재허가와 내년 상반기 종편 채널A, 연합뉴스TV 등 재승인 심사가 예정돼 있지만 모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또한 방통위가 추진해 온 알고리즘투명성위원회와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법제화, 뉴스 알고리즘 사실 조사 등 포털 관련 정책,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건너오는 방송사 법정 제재 건 등이 모두 중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방통위 정상화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새로운 위원 구성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회 추천 몫 3인이 임명 되는 방안이 있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앞서 최민희 방통위 상임위원 내정자는 지난 3월 야당의 추천을 받았지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해 임명되지 못했고, 지난달 7일 자진 사퇴했습니다. 여당에서는 이진숙 전 MBC 사장을 추천했으나 현재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결국 청문회를 거쳐 새로운 위원장이 나올 때까지 방통위가 멈춰 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탄핵으로 6개월의 직무 정지 사태를 피한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에 야당이 ‘이동관 아바타를 내세우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통위 상임위원)은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는 방송 정책주도권을 야당한테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에 대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