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웅, 우웅, 위이이잉~!' 두 손으로 감싸 쥔 게임패드에, 소년 로봇 피노키오(P)의 격렬한 모터 진동이 느껴집니다. 수많은 죽음 끝에 보스를 파훼(깨뜨림)할 때의 쾌감, 그리고 아버지 제페토가 숨긴 진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해외에서 'P의 거짓' 제작사의 이름을 다시 보게 했습니다. 콘솔의 변방, 아침의 나라에 있는
네오위즈(095660) 이야깁니다.
올해 네오위즈는 '4N'으로 올라설 계단을 쌓았습니다. 4N은 넥슨과
엔씨소프트(036570),
넷마블(251270)을 가리키는 '3N'에 N 하나를 더 붙인 겁니다. 매출 규모를 보면 아직 먼 이야기지만, 최근 네오위즈가 과거 3N으로 불리던 시절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세계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P의 거짓 오프닝 크레딧 마지막 장면에서 나비 모양을 한 에르고가 피노키오의 왼손 위에 착지한 모습. (사진=P의 거짓 실행 화면)
영업익 286% 증가
네오위즈의 실적도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방향은 우상향입니다. 올해 2분기 49억원 적자를 냈다가 3분기 영업이익 202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영업이익 52억원보다 286% 오른 기록입니다. P의 거짓이 100만장 판매 기록을 세운 영향입니다. 이 가운데 90만장이 해외에서 팔렸죠. 서사에 엄격한 서양 콘솔 게이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PC·콘솔 부문 매출도 2분기 270억원에서 3분기 548억원으로 103% 올랐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324억원에서 69%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3년 3분기 네오위즈 실적표. (자료=네오위즈)
P의 거짓 판매 실적은 4분기에도 반영될 예정인데요.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전망치)는 269억2000만원입니다.
다만 패키지 게임의 특성상, 판매량은 앞으로는 우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네오위즈 실적이 올해 하반기 수준을 계속해서 유지하긴 어려울 전망인데요. 현재 네오위즈 산하 라운드8 스튜디오는 P의 거짓 DLC(내려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DLC도 본편 못지않은 평가를 받을 경우, 제품 수명 연장과 추가 판매량 증가가 예상됩니다. 네오위즈는 P의 거짓 차기작 개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어떤 매력이 해외 콘솔 게이머들에게 네오위즈를 각인시킨 걸까요. 우선 이탈리아 고전 '피노키오의 모험'을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로 옮겨 재해석한 '잔혹동화' 서사가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게이머가 직접 결말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요소들이 이 서사의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주인공 P의 왼팔 '리전 암'입니다. 줄 달린 화살촉을 쏴 적을 끌어당기는 '퍼펫 스트링', 조준 사격하는 '팔콘 아이즈', 화염 방사기 '플람 베르주' 등 다섯 가지 무기를 왼팔에 갈아 끼우며 싸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결말의 주요 장면에서도 P가 리전 암을 사용하죠.
네오위즈의 '잔혹동화 IP' 활용은 게임에 국한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지금 네오위즈는 '할리우드의 탑 제작사'와 P의 거짓 영화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피노키오가 적을 조준 사격하는 리전 암 ‘팔콘 아이즈’를 착용한 모습. (사진=네오위즈)
'기계 팔·인간성'으로 호평
네오위즈 패키지 게임 사업의 미래를 밝히는 건 피노키오의 왼팔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패키지 게임 '산나비'에 등장하는 아빠의 오른팔도 있습니다. 원더포션이 제작하고 네오위즈가 배급하는 게임 '산나비'는 지난달 9일 정식 발매됐는데요. 공교롭게도 'P의 거짓'과 유사하게 서사의 힘, 그리고 사슬팔 조작의 재미가 게이머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산나비'의 최근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원더포션이 네오위즈 산하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패키지 판매 수익 기여도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죠.
딸 잃은 퇴역 준장인 주인공이 딸과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주인공 오른팔은 사슬을 쏘는 기계다. (사진=산나비 실행 화면)
이 작품은 가상의 미래 조선을 배경으로 딸 잃은 아빠의 처절한 복수극을 담았습니다. 퇴역 준장인 주인공은 딸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 '산나비'를 쫓기 위해, 대도시 '마고 시'로 떠나는데요. 기계로 된 오른팔로 쇠사슬을 쏴 벽과 천장을 타고 적도 파훼하며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갑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기계 팔을 무기로 씁니다. 주제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인데요. 두 작품의 결말까지 모두 본 결과, 이야기의 소재 및 그래픽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오위즈 판교 사옥에서 네오위즈-블랭크 투자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마르친 예피모프, 마테우슈 카닉, 배태근·김승철 네오위즈 공동대표, 미콜라이 마르헤브카, 옌제이 무르스. (사진=네오위즈)
'콘솔 본진' 유럽 정복 준비
이렇게 네오위즈는 두 가지 기계 팔을 앞세우며 패키지 게임의 장기적 성장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모바일 플랫폼과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선 모습입니다. 게임산업 조사기업 뉴주에 따르면, 올해 세계 콘솔 시장 규모는 561억달러(한화 약 74조원)로 전망됩니다. 이에 네오위즈는 P의 거짓 성공 이후 콘솔 시장 본진에서 입지를 다지는 작업에 한창입니다.
첫 단추는 콘솔 시장의 본진인 유럽에서 채웠습니다. 네오위즈는 최근 폴란드 게임 개발사 '블랭크 게임 스튜디오'에 1700만 달러(한화 약 224억원) 투자해 지분 21.26%를 확보했습니다. 이 스튜디오는 유명 게임 '위쳐' 시리즈와 '사이버펑크 2077'를 제작한 핵심 인력들이 올해 세웠습니다.
네오위즈 관계자는 "앞으로도 네오위즈만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패키지 게임, IP 발굴 등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지속적인 글로벌 투자를 통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