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일 부산 방문 도중 흉기로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 비슷한 사례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커터칼 피습'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한나라당에 불리했던 지방선거의 판세를 일시에 역전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6년 5월20일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대표로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흉기 공격을 받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지지 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오르다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고 봉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전은요" 한마디에…한나라당, 광역단체장 12곳 석권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입원 도중 유정복 당시 비서실장에게 "대전은요"라고 물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발언이 전해지자, 지지층 결집은 물론 동정표까지 더해지면서 중도층의 지지가 이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한 뒤 곧바로 선거 지원에 나섰고, 열세였던 선거 판세를 뒤집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휩쓸었습니다. 민주당 강세인 호남 3곳(광주·전북·전남)과 제주를 제외하고 전 지역을 석권한 겁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전북 1곳에서만 승리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 결과로 박 전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에 올랐습니다.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11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서 연설하다가 청중의 야유 속에서 날아온 달걀에 아래턱을 맞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시 경기도 의정부를 찾아 거리 유세를 하던 중 승려 복장을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달걀 공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30대 남성이 달걀 여러 개를 이 후보를 향해 던졌습니다.
또 2014년 5월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광주에서, 2021년 3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낙연 전 총리는 춘천에서 달걀 세례를 맞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생했던 정치인 피습 사례는 지난 2022년 3월7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 신촌에서 피습당한 사건입니다. 송 전 대표는 대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서울 신촌의 한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70대 남성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응급실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참배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피습에 '당 원심력' 약화…이낙연·비명계 행보 '제약'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이 오는 4월 총선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이번 사건은 선거를 앞둔 야당 대표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2006년 박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 박 전 대통령 피습은 선거를 3일 앞두고 일어난 반면, 이 대표 사건의 경우 선거까지 99일 남았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 현재 총선 판세가 민주당에 불리하지 않다는 점도 박 전 대통령 사건 때와 차이가 납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총선까지 많이 남았다.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박 전 대통령 피습 사건 때처럼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그런데 아직 선거일까지 많이 남은 상태이기 때문에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이번 피습 사건을 계기로 이낙연 전 총리와 '원칙과상식' 소속의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향후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전 총리는 이달 중으로 신당 창당 선언을,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에게 '당대표직 사퇴'와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수용’을 촉구하는 최후통첩에 나서려 했지만, 이 대표 피습으로 지연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낙연 전 총리의 경우)신당 창당을 위해선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준석 전 대표가 먼저 치고 나갔다"며 "안 그래도 타이밍을 한 번 놓쳤는데 이렇게 되면 두 번 타이밍을 놓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준석 신당이 먼저 세를 확보해 나가기 때문에 이낙연 전 총리 쪽에서 좋을 것은 없다고 보여진다"고 했습니다. 이 평론가는 "'당대표가 이렇게 당했는데도 탈당과 창당이냐'는 식의 비난 여론에 좀 더 명분이 생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