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연초부터 확률형 아이템이 뜨거운 감자입니다. 뜨겁다 못해 입천장이 덴 회사가 나왔는데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넥슨의 과거 아이템 확률 공개 누락과 거짓 공지 등을 문제 삼아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했습니다. 이에 넥슨이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가 없던 시기였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을 근거로 든 반면, 넥슨은 공정위 처분이 3월22일 시행을 앞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소급 적용이라며 맞섰습니다.
게임계에선 "정부가 게임산업법 시행을 앞두고 판교에 겁부터 주는 것"이라는 말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이에 8일 정정원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교수(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총무이사)를 만나, 사안의 본질을 물었습니다. 정 교수는 "게임사들이 이미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확률 공개보다는, 공개한 확률의 실제 작동 여부 검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정원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교수(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총무이사)가 8일 신도림역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우선 정 교수는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명백하지만, 공정위 스스로 넥슨의 '게임산업법 소급'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고 분석했습니다.
정 교수는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이 사건이 게임산업법 개정의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며 "이 때문에 행위 당시 법률상 의무 없는 일에 대한 소급적인 처분의 정당성에 충분한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번 공정위 처분은 게임사의 소비자 보호를 숙의하는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공정위 발표에 충격 받은 사람들이 게임사가 공개하는 확률의 실제 작동 여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정 교수는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에 소비자가 문제제기 하는 이유를 살펴야 하는데, 종래 확률 정보 미공개로 불만과 민원이 쇄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확률형 아이템이 사업자의 공지·공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됐는데, 이는 결국 이용자가 사업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로서는 사업자 스스로 게임 내 확률 요소 작동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계약 일방 당사자인 소비자가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양자를 대등한 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게 본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가 기업의 유료 서비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면 객관적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행을 앞둔 개정 게임산업법에는 확률 정보 공개만 규정돼 있고, 이 확률의 실제 작동 여부 공개를 이끌어낼 장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관련 내용이 대외비라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넥슨은 2022년 12월, 게이머가 직접 확률 데이터를 검증할 수 있는 오픈 API를 내놨습니다. 정 교수는 "소비자가 기업의 사업모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넥슨의 정보 공개 수준은 자율 규제로는 최상급"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 교수는 "소비자의 의문이나 민원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게, 정밀한 자율규제를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는 민원 창구를 만들고 게임사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협의체를 만드는 식으로 국가 규제와 자율 규제를 잘 섞어야 한다. 이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