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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의 K-국방)군사 핫라인, 9·19 합의 복원 시급
미국발 한반도 핵전쟁 예측 떠올라
입력 : 2024-01-30 오전 6:00:00
북한은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하에 신형 잠수함발사전략순항미사일(SLCM)을 시험발사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뉴시스)
 
북한이 연말 연초에 판을 크게 흔들고 나왔습니다. 남북관계에서 같은 민족 개념을 지우고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공언했습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미국 전문가들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올해 1월11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한반도가 1950년 6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을 실었습니다. 1994년에 미국 외교관으로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1월11일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올해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쟁에는 계획전쟁과 우발전쟁 두 형태가 있습니다. 계획전쟁은 1950년 한국전쟁처럼 한쪽이 마음먹고 준비해 상대방을 공격해 벌어지는 형태입니다. 정보 판단 등을 잘못해 분쟁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은 전쟁으로 순식간에 돌입하는 형태를 우발전쟁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한 배경은 흡수통일 차단 등 체제 방어 목적이 강하다고 봅니다. 핵전쟁을 위협한 것도 선제공격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면 모든 수단을 다해 보복하겠다는 의미이겠죠. 북한이 계획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발전쟁, 특히 우발 핵전쟁입니다. 분쟁 당사자가 재래식 무기만 쥐고 있을 때는 작은 충돌이 전면 전쟁으로 쉽게 번지지 않습니다. 다투다가도 상대 의도와 힘을 확인하고 절충할 시간이 있죠.
 
핵전쟁은 시나리오부터 다릅니다. 전쟁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분에서 몇십 분만에 상대방 무력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지상 발사 미사일과 공중발사 미사일, 잠수함을 이용한 수중발사 미사일을 ‘핵 3축 체계’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수단을 완비했다가 한순간에 상대방을 부숴버리겠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당해 괴멸한다는 가정이 핵전쟁 이론의 뼈대를 이룹니다.
 
실제 핵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누구도 잘 모릅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린 일을 빼면, 실전 사례가 없어서죠.
 
착오와 오해 때문에 핵전쟁에 들어갈 뻔한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1983년 9월 소련 방공군 장교이며 위성 관제센터 당직사령인 페트로프 중령은 미국에서 미사일 다섯 발이 날아오는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위성 관제 장치가 적의 핵 공격이라고 판독하고 핵 대응 발사 경보를 울렸습니다. 당직사령이 상부에 보고하기에 따라서 핵전쟁이 벌어질 순간이었습니다. 페트로프는 핵 발사 취소 코드를 입력하고 “컴퓨터 오류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인공위성이 햇빛을 미사일 발사 섬광으로 잘못 인식하고 핵 경보를 울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뒷날 <세상을 구한 남자>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죠.
 
핵 보유국들은 군사 핫라인을 운영합니다. 정보 판단 착오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핵전쟁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죠. 미국과 옛소련·러시아,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와 러시아, 인도와 파키스탄, 인도와 미국이 군사 직통전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의미 없는 메시지라도 매일 한 차례씩 주고받아 회선 상태를 확인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3년 11월 정상회담을 갖고 군사 소통 채널을 복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데 항의해 중국이 끊었던 채널을, 미국 요청으로 1년여 만에 되살렸습니다. <미국의 소리> 보도를 보니 2024년 1월9일 두 나라가 국방 차관보급 대화를 갖고 군 통신선 회복을 논의했네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함정과 항공기를 수시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주권 침해라고 반발하죠. 미군 정찰기가 중국 하이난섬 부근을 비행하다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하고, 정찰기가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건 열흘 뒤 미국이 영공 침범을 사과하고 중국은 승무원 24명을 석방했죠.
 
미국은 군사 활동으로 중국을 견제하되, 정찰기 사건 같은 우발 충돌을 피하면서 안전하게 활동하고 싶어 합니다. 군 통신선을 통해 군사 활동을 통보하기로 하면 안전해지겠죠. 중국은 자기네 군대가 미국 연안에 접근해 군사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 통보 필요성을 덜 느끼지만, 다른 외교 요인 때문에 통신선 복원에 합의했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8일 드론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이보형(소장) 드론작전사령관으로부터 전력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북한 군대가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포병 사격과 해공군 전개, 미사일 발사 강도와 빈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도부 인사들은 수위 높은 말을 쏟아냅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한미 동맹은 확장억제라는 핵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핵 대 핵으로 맞서면서 안전판을 두지 않는다? 한반도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남북한도 과거에는 정상 간 직통 전화, 동해 서해 군 통신선, 정보기관 통신선 등 여러 핫라인이 있었죠. 우발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직통전화로 오해를 풀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끊어졌습니다. 유엔군사령부와 북쪽을 연결하는, 분홍색 전화기를 사용해 핑크 폰이라고 부르는 회선 하나가 살아 있지만, 이 회선은 위기관리보다는 전화 통지문을 전달하는 행정 용도에 가깝습니다.
 
남북 접경지역에서 정찰 무인기를 띄우거나, 선전 전단을 날리다가 충돌을 빚고 작은 충돌이 국지전 또는 전면 핵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큽니다. 미국 전문가들이 전쟁을 경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군사 활동이 늘어날수록, 안전판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군 통신선을 애써 복원하는 이유도 생각해야죠. 본격적인 남북 대화가 어렵다면 군사 핫라인을 복원하기 위한 접촉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 군사적 완충지대를 설정했던 9·19 군사합의도 되살려야 합니다. 핵 대치 상황에 맞도록, 안보 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합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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