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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은 '정상회담 밀당'공식화…한국은 오로지 '자유의 북진'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기시다 "구체적 여러 활동 중"…김여정 "일본이 결단하면 새 미래"
입력 : 2024-02-16 오전 6:00:00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통일부 장관 -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정부는 자유의 북진정책을 추진하겠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일 '통일부 장관-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북한은 민족과 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남북 간 단절을 꾀하고 있지만 정부는 헌법 3·4조를 바탕으로 통일·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진'(北進)은 뜻이 명확한데, '자유의 북진'은 무슨 뜻일까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의 핵심은 자유"라고 전제한 김 장관은 "△핵전쟁 공포로부터의 자유 △연대의 자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적 자유 △평화통일을 통한 자유의 실현 등 네 가지 자유의 관점에서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수립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루스벨트의 '네 가지 자유' 연상했나
 
김 장관의 '네 가지 자유'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네 가지 자유'를 떠오르게 합니다. 루스벨트는 1941년 1월 의회 연설에서, 미국 내 2차 세계대전 참전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가 그 희생을 통해 확고하게 다져나갈 미래는 네 가지의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자유에 기초를 둔 세계일 것"이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네 가지 자유를 제시했습니다. 이 연설 11개월 뒤인 1941년 12월, 미국은 진주만을 공습한 일본에 반격하면서 2차 대전에 본격 참전하게 됩니다. 앞으로 윤석열정부가 북한에 대해 어떤 행동에 나서기 위한 밑자락으로 이런 발언이 나온 게 아닐까, 짚어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김 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심리전 준비 지시'와 맞춰보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통일부에 "최근 수사 결과를 보면 국내 단체들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들의 지시를 받아 간첩 행위를 한 것이 밝혀졌다"며 "북한의 통일 업무를 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도 국민들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홍보라든지 대응 심리전 같은 것들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통일부+국가정보원 격인 북한의 통일전선부가 한 행위에 대해 통일부가 대응하라, 그것도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하라는 몹시도 황당한 지시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로부터 한 달 뒤 국가정보원은 북한에 대한 심리전을 담당할 대북심리전국을 1급 독립 부서로 신설했습니다. 뒤이어 이번에 통일부가 대북 선전·심리전을 통해 북한을 흔들겠다고 나선 걸로 보입니다. '북진'이라는 이승만 시대의 선정적 표현을 끌어다 쓰면서 말입니다.
 
심리전은 북한이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후 남북간에 우발적 충돌의 발화점이 될 수 있는 예민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의 입장 변화 시한으로 정해 둔 올해 연말이 김정은 자신의 사망선고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2019년 5월 기고문)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할 정도로 극단적인 김 장관에게는 별문제가 아닐 겁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연합뉴스)
 
기시다 정상회담 추진 공식 확인, 김여정은 화답…북핵 문제가 걸림돌
 
북한과  최근 모습은 윤석열정부의 '북진' 운운을 무색하게 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9일 중의원(하원)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라고 답했습니다. "작금의 북·일 관계 현상에 비춰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면서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움직여 정상끼리 관계를 구축한다"고도 했습니다. 그간 여러 차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밝혀온 기시다 총리가, 이를 위해 일본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겁니다. 
 
이에 북한이 화답하고 나섰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는 담화를 냈다고 전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기시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그는 이 담화를 "개인적 견해"라고 했지만, 북한 체제 특성상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을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허락없이 발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사진=연합뉴스)
 
현재 북일 간 접촉은 김 부부장도 언급한 대로 납북자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UN과 미국 독자제재 등 국제사회로부터 봉쇄 수준의 유례없는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이지만, 지지율이 반등이 시급한 기시다 총리와 한미일 연대에 돌파구를 내야 하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임도 분명합니다..
 
트럼프, 대선 유세 때마다 빼놓지 않고 "김정은이 나를 좋아해" 
 
시간이 갈수록 백악관 복귀가 유력해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또 어떤가요? 지난 한 달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경선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찾았다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은 15일자에, 트럼프가 연설에서 잊지 않고 매번 꺼내 드는 주제 중 하나는 북한 김정은이었다고 전합니다. '스트롱맨(철권 독재자)' 친구들인 푸틴과 시진핑을 호명하지 않는 날에도 "똑똑하고 터프한 친구(김정은)가 나를 좋아해 4년간 북한이 잠잠했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할 경우 트럼프 2기 국무장관 1순위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7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트럼프의 리더십 아래 강력해진 미국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에도 최대치의 제재를 가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점잖은 무시'(benign neglect)를 버리고 다시 북한과 판을 벌려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8년 9월 21일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는 남조선 대통령 문재인이 함께하는 게 아닌, 각하와 제가 직접 논의하기를 희망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들에 문 대통령이 보이는 과도한 관심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핵문제 논의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빼자는 건데, 하물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김정은 2018년 트럼프에 "비핵화 문제, 문재인 빼고 논의" 제안…윤석열엔 어떨까?
 
김 위원장은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인 2019년 8월 5일 편지에서는 "한국과의 '군사 게임'과 '전쟁 연습'이 끝났을 때 제게 다시 연락을 주기 바랍니다. 그때 실무급 대화의 시간과 장소를 논의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북미 회담 재개조건을 트럼프에게 제시해 놓은 겁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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