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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커와 레벨 노가다
입력 : 2024-03-04 오후 6:17:43
중국산 방치형 게임 '버섯커 키우기' 인기가 여전합니다. 4일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버섯커는 이날 국내 구글 매출 4위를 기록하며 숱한 리니지 라이크 게임을 따돌렸습니다.
 
버섯커를 두고 '천편일률적인 리니지 라이크 양산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기엔 '지친 사회의 단면'이란 문장이 숨어있습니다.
 
이 게임은 단순합니다. 게임 시작과 함께 어디서 많이 본 버섯 캐릭터가 스스로 괴물들과 싸웁니다. 화면 아래에 있는 램프를 계속 누르면, 새로운 무기나 갑옷이 나오는데요. 캐릭터 능력치를 올려주면 착용하고, 아니면 판매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본래 게임이란 매체의 특징은 '극복하지 않아도 될 장애물을 스스로 넘었을 때의 재미'를 준다는 점인데요. 버섯커 같은 게임은 마치 내가 달리는 대신, 장애물 달리기 선수 등에 업힌 듯한 느낌을 줍니다.
 
‘버섯커 키우기’는 시작하자마자 버섯이 알아서 싸우는 방치형 게임이다. (사진=버섯커 키우기 실행 화면)
 
저는 이 게임을 해야 할 이유를 몰라 7분만에 껐는데요. 이후 만난 몇몇 게임사 관계자는 버섯커를 재밌게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버섯은 점점 자라다가, 어느 순간 사람으로 변한다고 하네요.
 
어린 시절부터 콘솔 게임을 즐겼던 한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위주로 게임을 즐기면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고전 명작이라고 부르는 게임들은 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잖아요. 강한 보스를 잡으려고 같은 사냥터를 뱅뱅 돌며 '레벨 노가다(일정 레벨까지 올리기 위한 반복 사냥)'를 하는 게 필수였죠. 특히 완벽을 추구하는 저는 최고 레벨에 모든 마법 획득을 하려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했죠. 그런데 그땐 열심히 했던 레벨 노가다를, 지금 다시 하라면 힘들어 못 하겠어요."
 
우린 캐릭터가 알아서 싸워서 손쉽게 키울 수 있는 방치형 게임의 강세는 '지친 사람들이 즐길 것'이 많아진 매체 과잉 시대를 반영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땐 그래도 재밌었는데. 개발자도 게이머도, 게임 몇 개 말고는 즐길 게 없던 시절엔 이전부터 이어온 레벨 노가다에 거부감이 없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보고 즐길 게 넘쳐납니다. 모바일 게임은 특성상 편의 기능이 많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고전 명작들의 재미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진짜 재미였을까? 기본적으로 잘 만들었으니 명작이겠지만, 즐길 거리가 없던 시대를 반영한 평가는 아니었을까, 하고요."
 
저 역시 요즘 게임이 주는 편의성에 익숙해졌습니다. 최근 한 선배가 강력 추천한 일본 게임 '퍼스트 퀸 4'라는 고전 작품을 구해, 주말에 실행해봤습니다. 도입부 연출부터 1994년의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대체 무얼 눌러야 할 지 모를 복잡한 화면에 질려서 게임을 껐습니다. 저는 이미 설명서가 필요 없도록 설계된 요즘 게임에 손이 익은 겁니다.
 
요즘 세상엔 쉬운 오락이 많습니다. OTT가 극장을 대신하고 있고, 신작 콘솔 게임도 스트리머가 '실황 중계'를 하죠.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고, 게임 사지 않아도 남이 하는 걸 구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관을 찾거나 플레이스테이션(PS) 게임 디스크를 사는 사람들이 두 매체의 근간을 지탱합니다. 영화관과 패키지 게임만이 주는 몰입감은 그 어떤 플랫폼의 '편의성'으로도 대신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극복 없는 게임의 유행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버섯커에서 깊은 서사와 감동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방치형 게임이 수천만장씩 팔리는 대작 콘솔 게임을 대체하진 못합니다.
 
오히려 버섯커는 MMORPG 과잉 시대에 '재미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한국 게임계에 약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재미의 다양성을 말하니 갑자기 고전의 재미가 궁금해졌습니다. 주말에 퍼스트퀸4 설명서를 읽어야겠습니다.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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