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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의 K-국방)시민 정신 억누르고 강한 군대 만든 역사 없다
'국민의 군대' 기원, 프랑스 역사 주목
입력 : 2024-03-12 오전 6:00:00
2017년 7월14일 오전 프랑스 파리 프랑스 샹제리제 거리(Champs elysee)에서 바스티유의 날(Bastille day)을 맞아 프랑스 군병력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바스티유의 날은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된 1789년 7월 14일 무능한 군주 루이 16세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역사학과 존 린 교수가 쓴 <배틀, 전쟁의 문화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군사학 분야 현대 고전으로 꼽히는 좋은 책이죠. 이 책에서 저자는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나폴레옹 군대가 강한 힘을 발휘해 유럽을 제패한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18세기를 다룬 전쟁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소총을 들고 횡대 대형으로 나란히 줄을 맞춰 적진으로 전진합니다. 흩어지지 않고 줄을 맞춰 있으면 적군 총탄에 희생당하기 쉬울 텐데, 왜 그랬을까요? 당시 총기 사정거리가 짧았다는 군사기술 요인이 있겠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린 교수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군대는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군대였습니다. 귀족이 장교를 독점하고 하층민이나 용병으로 병사를 충원했죠. 하층민과 용병은 왜 싸운다는 자주적인 인식 없이, 장교가 통제하는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였습니다. 장교들은 병사들을 통제하기 쉽도록 횡대 대열을 고안해냈죠.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귀족과 교회의 전유물이던 토지를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도 소유하게 됐습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전제왕정 세력은 시민혁명을 분쇄하려고 전쟁을 선포했죠. 프랑스 시민들은 앞다퉈 군대에 자원했습니다. 병사와 장교는 능력에 따라 선임하고 신분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자기 재산권과, 재산권을 허용해준 국가를 지키겠다는 목적의식을 지녔습니다. 오늘날 '국민의 군대' 개념이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지휘한 프랑스 군대는 횡대 대신에 산개 대형을 도입했습니다. 병사들이 총을 들고 흩어져 각개약진하는 거죠. 희생은 줄었고 공격력은 강해졌죠.
 
하층민과 용병으로 구성된 전제왕정 군대는 병사들이 탈영할까 봐 야간 행군을 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야간 행군으로 기동력을 높였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시민 정신으로 무장한 덕분에 유럽 열강과 싸워 이겼습니다.
 
우리 민족도 무장 독립운동과 광복군 시절에 시민 정신을 중시했습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거치면서 조선 왕조를 회복하겠다는 복벽주의나 신분제 전통과 선을 그었죠.
 
조선 총독 암살 작전 실화를 토대로 만든 2015년 개봉 영화 <암살>을 기억하시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예 세 명을 선발했습니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배역),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배역),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배역) 세 대원은 토의를 벌여 안옥윤을 지휘자로 선출합니다. 양반이 아니라 평민 출신인 홍범도가 독립군 장군이 된 것을 비롯해 독립전쟁 역사에는 시민 정신을 발휘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해방 뒤 현대 한국군 상층부를 차지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자들이 독립군, 광복군 전통보다는, 제국주의 일본군대 폐습에 물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군대는 군국주의를 숭상했고 엄정한 외적 군기를 강조하면서 가혹한 체벌을 용인했습니다. 군인을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소모품처럼 여겼죠. 부패도 심했고요. 베트남 전쟁의 명장인 채명신 장군은 한국군에서 일본군 폐습을 도려내려고 몸부림쳤던 일화를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많은 중장년 남성은 군대 시절을 나쁘게 기억합니다. 힘들더라도 존중받으면서 임무를 수행했다기보다는 그 반대를 경험했던 거죠. 필자는 국방홍보원장 시절에 우리 군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열심히 홍보했지만, 한계도 느꼈습니다. 자식을 군대 보내는 엄마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내려놓지 않더군요.
 
한국군은 지난 여러 해 병영문화를 많이 개선했습니다. 2014년 구타로 숨진 윤아무개 일병 사건을 계기로 가혹행위 근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2018~2019년에는 영창제 폐지, 병사 휴대폰 사용 등 장병 인권 개선 조처를 적극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은 2019년 12월 펴낸 책에 <선진 민주 국군을 향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임기 중 추진한 국방개혁 과제를 선진과 민주라는 열쇳말로 요약했죠.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회의 개의를 놓고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들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육군 3성 장군 출신인 국방위원장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월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모든 장병이 시청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건국전쟁>은 공과 과가 있는 이승만 대통령 행적에서 과는 쏙 빼놓고 공만 부각시켰다고 비판받는데요.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으로 이승만의 잘못을 명시했습니다. <건국전쟁>은 헌법이 채택한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도 벗어나 있죠. 그런 영화를 장병들한테 의무 시청시킨다고요?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강요하는 정치 중립 위반 행위이며 입대한 젊은이들의 시민적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국방부는 장병 정신전력 교재에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기술했다가 문제가 되자 교재를 수정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습니다. 이 교재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는 빼놓고 공만 나열했습니다. 원고를 수정할 때 이 부분도 고쳐야 합니다.
 
나폴레옹의 군사혁신을 포함해, 군대에서 시민 정신이 왜 중요한가를 살펴봤습니다. 시민 정신을 억누르고 강한 군대를 만든 사례가 세계 역사에 없습니다. 우리 군대도 병영문화를 발전시키려고 애써왔습니다. 시대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을 누구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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