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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뿌려줘"
입력 : 2024-03-11 오후 1:27:24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셨던 할머니는 한국 나이로 딱 100세를 채우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잠시 저희 집에 머무르신 적이 있는데요. 할머니께서 살아있음을 ‘징역살이’로 표현하신 기억이 납니다.
 
구구단을 외우고 계실 정도로 할머니는 총명하셨어요. 다만 너무 또렷한 정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병든 육체' 때문에 괴롭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죽고 나면 "멀리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허공에 뿌려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봉안당(납골당)도 거부하셨어요. 후손들이 관리에 고생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할머니의 유골은 수목장에 안치됐습니다. 
 
얼마 전 큰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유골은 화성 추모공원 봉안당에 안장됐는데요. 사진이 안치된 봉안당에 들어서니 계속해서 떠나지 않고 기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목장의 형식을 취하면 고인은 홀가분하게 자연으로 돌아가실 수 있겠지만, 남겨진 이의 입장에서는 멀리 떠나보낸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가족들은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봉안당은 도서관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자연에 뿌려야 불어오는 바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듣고 보니 저만 아직도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듯 싶었습니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장사 시설이 현저히 부족해지는 가운데, 정부가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바다 등에 뿌리는 '산분장'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분장은 국내에서 실현 가능한 가장 친환경적 장례 방식 중 하나인데요. 우리나라의 기존 장례문화가 체면을 중시한 탓에 유가족과 조문객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던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산분장에 대한 인식이 최근 급속히 변화해 2022년 기준 국민 5명 중 1명이 산분장 형태의 장례를 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분장이 제도화되면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처럼 어머니의 유언대로 다리 위에서 유골을 뿌릴 수도 있게 될 것 같은데요. 저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순간을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세종시 은하수공원 화장장(사진=연합뉴스)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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