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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즉·강·끝'만 부여잡고 있으면 될까요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북일 정상회담 환영하는 미국 "북 원하면 우리도 접촉 추진"
입력 : 2024-03-15 오전 6:00:00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가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수석대표협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핵문제는 장기간 교착 상태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2021년 1월 취임 이래 모든 접촉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점잖은 무시'로 일관해 왔습니다. 남북 간에도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거론되는 가운데, 북한은 남한을 "적대적인 두 국가 및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변화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이 지난 4일 <중앙일보> 행사에서 '올해 기대하는 외교 성과와 북한 핵군축론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제를 두면서도 "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특히 현재 한반도 상황에 비춰봤을 때 '위협 감소'에 대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고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도 했습니다.
 
이 발언은 랩-후퍼 선임보좌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바이든정부 차원에서 정리된 입장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바이든정부의 북핵 문제 담당 실무책임자인 정 박 국무부 대북고위관리(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가 랩-후퍼 선임보좌관의 중간 단계 조치 언급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과정에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라고 확인해 준 겁니다. 그러나 그는 "중간 단계 조치에 (즉각적인 CVID가 아닌) '동결'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으면서 "전술핵무기와 (미사일의) 고체연료 및 극초음속 능력, 무인 잠수정 등 북한 무기 관련 활동과 확산의 범위를 생각할 때 우리가 (협상에서) 다뤄야 할 무기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에둘렀습니다.
 
'중간 단계'와 그 상황에서의 '조치'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논란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적 접근법'은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더욱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이 자체적인 '핵우산'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에 핵과 관련해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할 정로도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한 상황에서 '원샷-빅딜'로 해결하기는 난망합니다.
 
바이든정부 인사들의 발언은 미국이 당장 나서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상황관리' 의도가 강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가자' 두 개의 전쟁 와중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 바이든 정부로서는 한반도만이라도 조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 "비핵화 과정에서 '중간 단계 조치'는 당연"…새로운 내용 아닌데도 주목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조건 없는 대화'라는 영혼 없는 외교적 발언만 반복해 온 바이든정부에서, 북한 업무 담당자들이 공개적으로 '중간 단계’를 언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발언자가 '대북 강경파'로 꼽히는 정 박이고, 그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외교"라면서 "이를 위해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보낼 것"이라고 밝혔으며, 또 이들이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바이든정부는 북·일간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달 9일 중의원(하원)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 관련 질문에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며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움직여 정상끼리 관계를 구축한다"고 공식 확인하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고 화답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 박 대북고위관리는 "북한은 그간 러시아ㆍ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대화와 외교에 관심이 없었다"며 "그러니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우리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고, 미 국방부 브리나 싱 부대변인도 "우리는 북한과 외교 접촉을 지지하며, 우리도 북한이 원한다면 외교 접촉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미국 정부 인사들의 이런 긍정적 태도 표명은, 북·일간 접촉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임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북핵문제와 납북자 문제라는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있고, 미국의 최근 움직임도 한반도 상황 관리 목적이라는 측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강경일변도인 윤석열정부와는 다른 분위기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B-1 문서고를 방문해 김명수 합참의장으로부터 정례 한미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 연습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정부는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뿐입니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국방부가 강경 대응을 천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며 사실상 흡수통일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에서 교류·협력이 사라지고 오로지 북한 인권에만 몰두한 지 이미 오래고, 외교부도 북핵 문제를 담당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도 없앴습니다. 북핵 수석대표를 겸하는 현직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이 돌연 총선에 나가겠다며 여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이 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 아닐까요?
 
"한미 사이 빈틈 있다"시각도…중러가 새 6자회담 제안하고 북이 수용한다면?
 
이런 모습들은 미국·일본과 한국 사이에 대북접근법의 균열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앤킷 팬더 연구원은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은 불균형적 대응(압도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으나 미국은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양국 사이에 어느 정도 빈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논평했습니다.
 
지금까지 한·미·일 연대를 볼 때 지나친 전망이라고요?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수석연구위원은 최근에 낸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추구 경로 검토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INSS 전략보고에서 "미국이 핵전쟁 방지를 위해 직접 북한과의 양자 대화에 나서거나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역내 핵전쟁 위험 감소를 위한 다자대화를 추진할 경우에는 핵군축 협상으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면서 "금년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나 중북수교 75주년 계기 김정은 방중 등의 계기에 러시아나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6자회담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빅픽처 기획 가능"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또 이렇게 됐을 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라면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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