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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였다
입력 : 2024-03-28 오후 6:38:17
뿌리가 없는 나무는 죽은 나무다
꽃은 뿌리 뽑히면 향기를 잃는다
아파도 비명 없이 죽어가는 것들
 
뿌리 있는 것들은 말 없이 죽는다
입이 없기 때문에 조용히 썩는다
 
아프면 소리 치는 것들이 나무를 벤다
아프면 소리 치는 것들이 꽃을 꺾는다
아프면 소리 치는 것들이 뿌릴 뽑는다
 
이팝나무. (사진=이범종 기자)
 
나무의 아픔은 나무 뿌리의 고통이다
철쭉의 아픔은 철쭉 뿌리의 비명이다
국화의 아픔은 국화 뿌리의 상실이다
 
사람이 아프다는 건 나의 이름이 아프다는 것
가지 꺾여서도 아닌, 우지끈 부러져서도 아닌
 
그제 정원사가 사람 뿌리 하나를 갈랐다
나무야 뿌리를 넓혀라, 길어져라 하면서
 
벌어진 상처 밖으로 죽은 이름이 새어나왔다
상처의 틈으로 살아있는 고통이 파고들었다
 
고통이 이름을 마시자 고름이 되었다
다음날 고름이 터지자 비명도 튀었다
 
놀란 정원사가 물었다. 왜 지금에야 우니
"그땐 뿌리가 이렇게 아픈 줄 몰랐어요"
 
정원사는 가시 박힌 손을 펴보였다
너의 뿌릴 만질 때 나 역시 다쳐야 했다고
 
오늘 굳은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딱지를 쓰다듬던 손이, 뿌리를 닮은 상처에 닿았다
 
옹이였다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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