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엔터사 최초 대기업 지정을 앞둔
하이브(352820)의 성공 비결로 '멀티 레이블'이 꼽힙니다. 멀티 레이블 체제를 기반으로 음악적 색이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명확한 음악적 지향없이 데뷔에만 포커싱을 맞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레이블의 색깔 또한 흥행 트렌드에 맞춰 일원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데요. 각사 고유의 정체성 부각을 통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 하에서 지난 3년간 엔하이픈, 뉴진스, 투어스, 아일릿 등 총 8팀의 라인업을 추가했습니다. 미국 걸그룹 KATSEYE도 곧 데뷔할 예정입니다.
하나증권은 하이브가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하면서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완성했다고 평가했는데요. 각 레이블들의 기업가치는 총 12조6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입니다.
멀티 레이블은 다수 IP(아티스트 가치)를 전담하는 사업부를 구축하는 체제를 의미합니다. 미국 소니뮤직, 유니버설뮤직 등에 안착된 시스템입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한 하이브는 과거 BTS에만 의존하던 매출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해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BTS의 매출 기여도는 50%대 중반까지 떨어졌는데요.
중소 기획사를 합병하며 하이브가 자연스럽게 멀티 레이블 체제를 확립하자 타 엔터사들도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습니다. 동시 다발적인 IP 가동, 신인 아티스트의 빠른 인지도 상승 효과 때문입니다. 특히 K팝 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적 취향이 다양해지고 해외 팬덤이 빠르게 증가하다보니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이 커졌단 설명입니다.
에스엠(041510)은 지난해 이수만 프로듀서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3.0시대를 공언했는데요. 당시 내세운 핵심 가치가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였습니다.
JYP Ent.(035900)도 지난 2018년부터 멀티 레이블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엔터 빅4 사옥 외관(사진=각 사)
각 사 정체성 사라질 수도
그러나 최근 하이브 아이돌의 가창력 논란의 원인으로 멀티 레이블 체제가 거론됐는데요. 아티스트 공장처럼 '찍어내기' 식으로 단기간에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다보니 정작 기본적인 가창력 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입니다.
카카오(035720)엔터테인먼트도 산하 자회사들과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한 대표적 기업입니다. 독창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였는데요. 최근 각종 사법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시너지 효과를 위해 '계열사 통폐합, 흡수 합병' 등의 조직 개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후죽순 늘린 관계사를 교통정리 중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엔터기업들은 1세대 아이돌을 제작할 당시 총괄 프로듀서들이 책임지고 나서서 아티스트 컨셉을 만들었는데요. 음악을 듣기만 해도 YG인지 SM인지 JYP인지 구분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 목적으로 다양한 산하 조직을 갖추는 게 나쁘지는 않겠지만 음악적 지향없이 레이블로만 쪼갠다면 각 사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서는 IP를 보유한 회사를 레이블로 보고 있지만, 서구권에서의 원래 레이블의 의미는 '아티스트'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임수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서구권에서의 레이블 확장은 기존에 잘나가는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형식이었다"며 "회사를 갖다 붙이는 식은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대형 IP를 잘 키우는 게 사업의 핵심 요소가 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어 "멀티 레이블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국내 시초는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라고 본다"며 "에픽하이, 싸이, 테디 등 잘나가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독립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아티스트가 소속사를 나가면서 매출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습니다.
또 "해외 팬덤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충족시키려면 한 명의 의사 결정권자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하이브가 미국, JYP가 남미 쪽 레이블 인수를 시도하는데서 보듯 레이블의 확장은 해외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음반·음원 글로벌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한 하이브. 좌측부터 방시혁 하이브 의장,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 뮤직 그룹 회장 겸 CEO, 스쿠터 브라운 하이브 아메리카 CEO. (사진=하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