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승은·임지윤 기자] 정부가 야당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요구에 선을 그었지만, '민생추경' 놓고 줄다리기는 거세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올 상반기에도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법인세까지 급감할 우려가 높다는 점입니다.
올해도 세수 결손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 중동발 위기까지 겹쳐 민생고를 풀 해법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22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가 미뤄졌지만 추후 회동이 잡히는 데로 민생고 의제 중 추경 논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을 위해 15조원 규모의 추경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21일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 D.C.에 방문한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19일(현지 시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경은 경기 침체가 올 때 하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은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것보다 민생이나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타깃(목표) 계층을 지원하는 게 재정의 역할"이라며 야당의 추경 요구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추경 요구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이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입니다. 현재로서는 영수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가 취소되면서 다음 회동 일정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수회담이 성사될 경우 민생고 해법을 강조해 온 민주당으로서는 추경 편성을 의제로 꺼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가·기름값 압박…'법인세 리스크' 몰려
올해 재정당국이 재정 집행에 속도를 내는 등 민생 안정에 총력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 1분기 정부는 약자복지 지원, 일자리 지원 등에 213조5000억원을 집행, 연간 재정집행 계획(561조8000억원) 대비 38.0%를 집행했습니다. 이는 작년 1분기보다 47조4000억원 늘어난 수준입니다.
22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가 미뤄졌지만 추후 회동이 잡히는 데로 민생고 의제 중 추경 논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물가 압박은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를 보면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 상승률은 6.5%로 OECD 평균(5.32%)을 상회했습니다. 한국은 집계 회원국인 35개국 중 3번째로 높습니다.
휘발유와 전기·가스 요금 등 에너지류 물가 상승률도 상당합니다. 노무라증권의 조사를 보면 지난 1월~3월 한국의 월평균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로 주요 10개국 중 프랑스(2.7%)에 이어 2위입니다.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유가가 널을 뛰면서 공염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나라 재정입니다. 경기 침체에 기업 경영 상황도 악화하면서 법인세 수입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서 국세 수입을 367조3000억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전년 예산안보다 33조2000억원(8.3%) 줄어든 수준입니다.
이마저도 낙관에 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법인세가 작년 예산안 대비 27조3000억원(26.0%) 줄어든 77조7000억원으로 예상했는데, 기업들의 경영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아 이 수준에도 이르지 못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12월 결산 상장기업 705개의 작년 개별 기준 영업이익은 39조5812억원으로, 전년 대비 44.96% 급감했습니다. 전체 상장기업 매출액의 1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개별 기준 11조5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해 재무제표상 적자로 법인세를 '0원'으로 신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작년 '56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세수 펑크는 기업 경기 불황에 따른 법인세 축소에서 기인했는데, 올해도 반복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민생고 해법…'추경 논의 불가피'
경기 비관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건전재정 기조를 앞세우고 있는 정부가 추경을 단행할지 미지수입니다. 내년 정부가 갚아야 할 국고채가 101조7631억원으로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긴 상황입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추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만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 모두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안 대신 중소기업 등에 차등해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 상태에서는 추경보다는 한국은행에서 적정 시점에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고 이자 부담을 낮추는 게 우선"이라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추경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정부는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경해 재정 적자가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해 추경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세수를 늘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만약 꼭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추경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백승은·임지윤 기자 100win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