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2024년 4월20일은 한국 밀레니얼 세대에게 프리즘처럼 반짝이는 하루로 기억될 겁니다. 이날 서울 스카이아트홀에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초신성 플래시맨)' 한국 출시 35주년 팬미팅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지구방위대!"를 외친 사회자의 선창에 "후뢰시맨!"을 목놓아 외친 600여명은 주연 배우 일곱 명을 향해 눈물 섞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후뢰시맨은 열심히 외운 한국어로 "오늘을 기대했습니다"라고 화답했는데요. '옐로 후뢰시' 나카무라 요코를 제외한 후뢰시맨 전원과 개조실험제국 메스의 악역 세 명이 함께 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스카이아트홀에서 열린 후뢰시맨 팬미팅에서 가수 차형훈이 후뢰시맨 주제곡을 부르고 있다. 그 뒤로 후뢰시맨 수트를 착용한 전문 배우들이 서 있다. (사진=컴투스홀딩스)
후뢰시맨은 일본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해 테레비 아사히에서 1986~1987년 방영한 열 번째 슈퍼전대 시리즈입니다. 한국에선 대영팬더가 1989년 수입했습니다. 이 작품은 지구로 돌아온 다섯 청년이 개조실험제국 메스를 무찌르지만,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 플래시 현상'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슬픈 결말로 유명합니다.
이날 팬 미팅은
컴투스홀딩스(063080) 자회사 컴투스플랫폼이 준비했습니다. 블록체인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원작사 토에이 공인 굿즈와 팬미팅 입장권을 NFT(대체 불가 토큰)로 판매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스카이아트홀에서 열린 후뢰시맨 팬미팅에서 '레드 후뢰시' 타루미 토타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컴투스홀딩스)
수십년 기다린 팬들에 감격
성우 김혜성과 정의진이 진행한 토크쇼에선 팬 미팅에 대한 소감과 촬영 뒷이야기, 한국과의 인연 등이 소개됐습니다.
배우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 준 팬들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그린 후뢰시' 우에무라 키하치로는 "이번 달에 어머니 기일이 있다"며 "천국에서 어머니께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레드 후뢰시' 타루미 토타는 "전부터 오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5년을 기다렸다"며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다는 걸 처음엔 몰랐다"고 했습니다.
토크쇼 도중엔 명장면이 재현되기도 했습니다. '블루 후뢰시' 이시와타 야스히로는, '반 플래시 현상'으로 고향인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사실에 절망한 장면을 연기해 갈채를 받았습니다.
인기 악역 '레이 네펠'을 연기한 하기와라 사요코는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홈스테이) 호스트로 여러 나라 유학생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국인 학생이 있었다"며 "학생이 사람들에게 '호스트가 레이 네펠이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이날 객석에 앉아 네펠을 응원했다고 합니다.
수하 '우르크' 역을 맡은 나가토 미유키도 오랜 한국 사랑을 보여줬는데요. "서울 올림픽 이전부터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온다"며 "악역을 불러줘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그는 이날 행사를 위해 후뢰시맨 DVD 전편을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한국 팬이 선물한 바람막이를 입은 배우들이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컴투스홀딩스)
이날 행사에는 한국판 성우들도 함께 했습니다. 레드 후뢰시 역을 맡은 김환진 성우는 "빨리 했으면 좀 좋아! 뭐야 이게, 다 늙어빠진 다음에, 에휴!"라고 말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회에서 멀어지는 고향을 보며 "반드시 이 지구로 돌아오겠다"던 옐로 후뢰시의 빈 자리는 한국판 성우 최수민이 채웠습니다. 후뢰시맨 도우미 로봇 '마그' 등을 연기한 노민 성우도 팬들에게 화답했습니다.
팬미팅 후반에는 깜짝 손님으로 악당 '사 카우라' 역을 맡은 나카타 죠지가 채찍을 들고 등장해, 객석에서 탄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행사가 끝난 후, 한국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연기한 노민 성우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날 팬들은 '35년만의 변신'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후뢰시맨 배우들이 "프리즘 플래시!"를 외치며 변신 동작을 재현했는데요. 레드 후뢰시(타루미 토타) 옆에 선 김환진 성우도 함께 구호를 외치며 한국 팬 미팅에 의미를 더했습니다.
'그린 후뢰시' 우에무라 키하치로와 '블루 후뢰시' 이시와타 야스히로가 주제곡을 부르며 한국 팬들과 인사 하고 있다. (사진=컴투스홀딩스)
깊은 여운에 쉽게 못 떠난 팬들
이날 공연은 배우와 팬들이 후뢰시맨 주제곡을 함께 부르며 마쳤는데요. 팬들은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 이날의 여운을 이야기했습니다.
김포에서 온 이지웅(37)씨는 "팬미팅 내내 울었는데, 눈 마주친 배우 분들이 표정으로 울지 말라고 얘기해줬다"며 "제 인생의 추억이자 영웅들이어서 벅차다"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그간 모은 후뢰시맨 수집품으로 카페를 열 계획입니다.
노원에서 온 양모(38)씨도 "공연 마지막에 어린 시절 영웅들과 주제곡을 부르며 하이파이브도 하고 추억을 나눠서, 오랫동안 이 감동에 젖어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후뢰시맨 배우들이 팬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 위부터 그린 후뢰시(우에무라 키하치로), 레드 후뢰시(타루미 토타), 블루 후뢰시(이시와타 야스히로), 핑크 후뢰시(요시다 마유미). 왼쪽 아래부터 우르크(나가토 미유키), 깜짝 손님 사 카우라(나카타 죠지), 레이 네펠(하기와라 사요코), 키르트(코지마 유코). (사진=컴투스홀딩스)
다만 행사 진행에 아쉬움을 드러낸 팬들도 있었습니다. 전문 통역사가 아닌 성우들이 진행하다 보니 일부 오역이 있거나 그냥 넘어간 부분이 있어,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은 팬들이 소외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대화방에선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쓴 소리도 나왔습니다.
2부 중간에는 사전 추첨에 당첨된 팬 100명과 배우들의 사진 촬영이 있었는데, 나머지 500명은 이 순서가 끝나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깜짝 손님인 나카타 죠지가 너무 짧게 등장해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팬들은 "배우들과 만난 점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날 내린 봄비처럼, 후뢰시맨과 밀레니얼 어린이들의 가슴엔 프리즘처럼 빛나는 추억이 젖어들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