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미국에서 무척 성공한 한 기업가와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한인으로 1970년대에 넘어가 슈퍼마켓부터, 땅바닥부터 노력해 이 자리에 왔다고 한 그 분은 저를 보며 부자가 될 비법을 알려주셨는데요. 바로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그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눈을 키워야한다"고 했습니다.
가령 통장 잔고가 어느 정도 이상이면, 0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 눈에 띄지도 않고 신경도 안쓰인답니다. 든자리는 크게 보이지가 않는대요. 하지만 난자리는 바로 눈에 띄는 데 '왜 난자리일까?'를 분석해 돈을 투자하면 배는 더 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보통 호황일 때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붙지만, 난자리는 비난하거나 외면하기 십상인데요. 위기를 겪을 때 '왜 쟤가 나갔을까? 왜 저 가게가 나갔을까? 왜 저 상품이 안팔릴까?'를 분석하면 돈이 벌리는 아주 심플한 이론이라는 겁니다. 여러 좋은 얘기가 있었지만 이 한 마디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잘 될 때나 유심히 들여다보지, 안 될 때는 외면했던 적이 많아 찔렸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분다. 퇴사 바람!' 지난달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 시민이 겉옷으로 바람과 비를 피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퇴사 바람입니다. 제 주변에만 한 달만에 5명이 그만 뒀는데요. 이직은 고사하고, 아예 업계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필드에서 마주치면 인사 한 번 더 하고, 서로 이끌어주며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던 동료 선후배인데... 마음 한 켠이 씁쓸합니다.
업계를 떠나겠다고 공언한 선배 동료 기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2명은 회사 내부 문제입니다. A기자는 부장과의 마찰과 회사의 부침이 있어 기자로서의 업무는 괜찮았지만 사람이 힘들어서 결국 업계를 떠났습니다.
2명은 기자 업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둔 B기자는 "매일 발제도 힘들고, 밤에 잠도 못 자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않아 힘들다"며 "그렇게 내놓은 발제도 매번 통과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맛"이라고, 배우자와 저녁 미팅 건으로 더이상 다투고 싶지 않다며 떠났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건강 때문입니다. C기자는 "내 건강이 이렇게 나빠진 것은 회사인지 기자 업무인지... 조금 낫게 되면 배는 나빠지는데 무튼 내 탓은 아니다!"라며 살려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사실 '직장 탈출'은 어느 직종에나, 시기나 회사에 한정 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엑소더스 현상'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집단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문제점이 특정될 수 있을 때 붙일 수 있는 거지요. 아마 오래 이 업계에 몸담았던 선배들은 더 많은 경험과 사례를 보셨을 겁니다. 지금은 '엑소더스'도 아닌 때지만, 다만 경력이 짧은 저는 근래 '이렇게 많이 나가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매주마다 한 명씩 동료가 사라지고 있어 어안이 벙벙한거고요.
그럼 이게 과연 우리가 MZ세대라서 옛 선배들에 비해 '조금'을 못버티고 나가는 건지, '그만한 사명감이 없어서' 대기자 할게 아니라 미래가 안보이니 꿈을 찾아 떠나는 건지, 노력한 만큼의 대우를 못받아 '워라밸(워크라이프밸런스, 직장과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나는 건지, 연봉인지, 회사인건지, 어차피 채워지는 사람들이 있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업계 내 대응인건지, 열정으로 버틸 만큼의 기자의 매력도와 가오가 떨어진 것인지, 아님 다인 것인지…곰곰이 생각해볼 수록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건 여전히 어렵네요. 이러니 '돈 버는 사람들만 돈을 버나?' 싶은 우스운 생각과 함께, '난자리'를 그리워하며 힘든 시기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버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