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한국 군대의 새로운 적: 인구 절벽’. 미국 CNN이 지난해 12월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한국을 위협하는 건 북한이 아니라 인구 절벽이라는 내용입니다. 기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이 국제 정세에 대응할 군대 병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는 ‘인구 절벽’에 더해 ‘지방 소멸’까지 언급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인구는 주는데 그 인구조차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명을 기록하는 인구 급감 추세에도 수도권 인구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여기에 양질의 고임금 일자리, 교육과 의료 등 기초생활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면서 ‘서울공화국’으로 고착된 구조는 수도권 인구 집중을 가중시키고 지방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10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수도권 인구는 서울 939만명, 경기 1363만명, 인천 300만명으로 총 2601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인구의 50.7%에 해당하는 수치로, 국토 면적의 12.6% 밖에 되지 않는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몰려 있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의 도시들이 빠르게 축소될 경고등이 켜진 겁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취업자도 같은 기간 수도권이 1448만명으로 전체의 51.6%를 차지했습니다. 기업 수출도 수도권에 집중됐습니다. 우리나라의 2022년 기준 총수출 6836억달러 중에서 서울 등 수도권 비중은 72.3%에 달합니다. 특히 대기업의 수도권 수출 비중은 79.0%로 더 높았습니다. 서울이 전체 40% 비중을 차지합니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OECD 국가 최저 수준의 합계 출산율로 인해 인구의 자연감소가 발생하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이미 진행 중”이라며 “지방 중소도시 인구가 대도시로 유출되면서 지방 인구가 감소하는 수도권 집중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특히 인구의 수도권 이동 규모를 보면 20대 청년인구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청년인구 유출로 인한 연령구조의 변화는 출생아 수 자연 감소나 지역 인구 고령화 속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지방 인구 감소의 악순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방 살리기, 10년간 매년 1조원 투입
원래 ‘지방 소멸’이란 말은 마스다 히로야 일본 전 총무대신이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됐습니다. 그는 일본의 인구감소 속도가 도쿄보다 지방에서 더 빠르게 진행돼 기초자치단체 절반이 인구 감소로 2040년까지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향후 30년 이내에 대도시만 생존하는 극점사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정부는 2021년부터 전국 시군구를 대상으로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고, 인구감소 대응 사업에 연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39%인 89곳을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에 놓인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지역 지정은 최근 자연적 인구 감소와 사회적 인구 유출로 지역 사회의 활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왔습니다.
이에 인구감소지수를 산정하는데, 다양한 원인과 문제가 복합된 인구 감소 현상을 반영하도록 연평균 인구 증감률, 인구 밀도, 청년 순이동률, 고령화와 유소년 비율, 재정자립도 등 지표별 가중치를 부여합니다.
행안부는 이 지수를 토대로 인구감소지역을 5년마다 지정합니다. 이들 지역에는 인구감소 대응 사업으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연간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하고, 2조560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사업을 병행하며 지방 살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구감소지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출범식에서 고기동 행안부 차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인구가 미래다 지방소멸 위기 함께 극복합시다’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방 인프라 격차, 악순환 고리”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방 소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격차는 두 지역의 주요 기초생활 인프라 차이를 비교해도 바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방소멸 위기지역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보면, 대표적인 기초생활 인프라 시설인 의료기관의 지역 간 분포 격차는 서울이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수가 1.9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대구가 1.6개, 대전 1.5개, 전북 1.5개로 나타났고, 다른 지역은 모두 1.5개 아래였습니다.
공공기관과 대학교, 요양기관 등도 절반 가까이 수도권에 위치했습니다. 지난 2019년 기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339개으로, 공기업이 36개, 준정부기관이 93개, 기타공공기관이 210개입니다. 이중 149곳(44%)이 수도권에 몰렸습니다.
대학교는 전체 3분의 1 가량이 수도권에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전국의 대학교 339개 중 약 34%인 116개가 수도권에 위치했는데, 상대적으로 비수도권에 대학교가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상위권 대학은 모두 서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입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도 꼽힙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치료가 가능한데도 적기에 대응하지 못해 사망하는 치료가능 사망률에서 경북 영양군이 서울 강남구보다 4배 가까이 높다”며 “지방 인구가 감소하면 의료와 대중교통, 세탁소 등 생활 인프라 취약지역이 늘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구가 단위 지역 내에서 3000명 이하로 줄어들면 보건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고, 2000명 이하로 줄면 식당, 제과점, 세탁소, 미용실 등이 폐업하기 시작한다”며 “결국 지방 소멸 현상은 생활이 편리하고 생활서비스 공급이 원활한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인구 유출이 촉진되는 악순환의 고리”라고 지적했습니다.